[풍경소리] 쓴소리, 단소리, 그리고 질투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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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쓴소리, 단소리, 그리고 질투하는 소리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3-05-15 14:12
  • 신문게재 2023-05-16 19면
  • 이유나 기자이유나 기자
송기한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어느 집단이나 사회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말들이 있게 마련인데 이를 쓴소리라고 한다. 그러니 여기에는 분명 생산적인 면이 들어가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단소리가 그것인데, 이는 보통 아부하는 소리이다. 여기에는 부정적인 면이 들어가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느 국가나 왕조, 혹은 정권이 몰락하는 배경에는 이 소리가 늘 깃들어 있었다.

이런 소리와는 별도로 질투하는 소리도 있다. 질투의 사전적 의미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샘을 내고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사람이 잘되거나 자신보다 앞서서 좋은 위치에 있는 것을 시기하여, 미워하며 깎아내리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감정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생산과 연결될 수 있는데, 만약 어떤 사람이 질투를 느끼고, 이를 넘어서고자 스스로 채찍질한다면, 그것은 분명 긍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질투가 이렇게 생산적인 것과 연결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우리 속담에 '사돈의 팔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사돈이라면 친족보다는 먼 관계이고, 또 그 팔촌이고 보니 거의 남과 가까운 존재이다. 그러니까 이 속담은 '남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로 바꾸어도 될 듯하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정서가 만연해 있고, 그것이 이 사회를 좀먹는 매개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 탓에 심각하다.

이와 관련된 아주 오래전의 일화가 있다. 하숙하던 시절의 일인데, 언젠가 주인집의 가족이 일본에서 왔고,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한국인이면서 대화를 할 때면 일본 말을 하곤 했다. 소박한 민족주의 탓인지 적지 않은 불쾌감이 일었다. 그래서 한 마디 던졌다. 한국인이면서 왜 일본말로 대화를 하느냐, 듣기 싫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몇 마디를 덧붙였다. "이런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좀 해야겠습니다. 일본에서는 특정 분야에서 누가 잘 나가면, 더 잘 하라고 격려해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어떤 사람이 잘되거나 자신보다 앞서서 좋은 위치에 가게 되면 뒤에서 욕하고 깎아내리려 한다. 질투한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김포 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자 하면, 택시 기사가 우선 짐부터 본다. 짐이 많으면 그냥 휙 가버린다. 일본에서는 안 그런다. 짐이 많으면 기사가 얼른 내려 트렁크부터 연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해외 여행이 자유화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일본 사회가 그런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우리 사회에 만연된 질투와 불친절은 분명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에 대해 반박은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 적이 있었다.



일본은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2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이 전부이다. 남한의 인구가 일본의 3분의 1 정도 되니 적어도 7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혹자는 우리나라가 노벨상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군사문화의 유산에서 찾고 있다. 가령, 3년의 프로젝트를 주었으면, 결과물이 반드시 이 기간 안에 나와야 하는 인과론적 구조에서 찾고 있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시간의 구애 없이 계속 지원한다고 한다. 그러한 차이가 노벨상의 숫자를 결정지었다고 보는 것인데,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쩌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질투 문화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주변의 누군가가 잘 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려 들지 않는다. 잘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나로부터, 아니 주변의 모두로부터 그는 미움을 받고 깎아내려 져야 하는 주체로 바뀐다. 공부 열심히 하는 학자는 주변의 동료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될 뿐 공존해야 할 존재로 남아 있지 못한다. 게다가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나 학자가 내 직장의 동료가 되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내 앞에 누가 있다는 것이 가당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어른이나 훌륭한 학자는 스스로 노력에 의해서도 만들어지지만,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 속에서 성장하는 측면도 큰 것이 사실이다. 이제 험담이 아니라 칭찬을,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하자.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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