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옛사람의 한글 편지와 부부의 날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옛사람의 한글 편지와 부부의 날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23-05-14 08:58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백낙천 배재대 인문사회학장
백낙천 교수
우리나라는 오랜 시간 동안 고유의 문자를 가지지 못해 구어와 문어가 불일치된 이중 언어생활을 해왔는데, 문자 생활에 있어서 우리 선조들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한자를 사용하였고 우리말을 적는 데에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려서 우리말을 적었는데, 이를 차자(借字) 표기라고 하며 이두와 구결, 향찰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한자를 응용하여 우리말을 온전하게 표기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언문 불일치에서 오는 문자 생활의 불편함은 한글의 창제를 통해 극복될 수 있었다.

한글 창제는 한국어를 자유롭게 적을 수 있는 언문일치 시대를 알리는 역사적 쾌거였지만 언문 불일치의 언어생활은 한글 창제 이후에도 지속 되었으며, 이 시기 우리의 문자 생활은 여전히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글이 문자 생활의 전면에 서서히 부각 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중에서 한글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된 영역은 한글 간찰이었다.

오늘날 편지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 한글 간찰을 언간(諺簡)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언(諺)'은 이른바 '언문(諺文)'을 가리키는 것으로 중국 문자인 한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추거나, 속되게 부르는 의미가 아닌 대립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한글'의 다른 이름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한글 간찰 곧 언간은 옛사람의 한글 편지이며,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한편 언간이 옛 무덤에서 출토되고 본격적인 역주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학계와 사회적 관심이 확대되어 갔는데, 2011년 5월 3일에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 산 110-3번지 안정 나씨 묘역을 이장하는 중에 신창 맹씨의 목관에서 복식, 유물 약 40점을 수습하면서 언간 2건이 함께 출토되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 언간은 남편인 나신걸(1461-1524)이 부인인 신창 맹씨에게 1490년경에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글이 창제된 지 얼마 안 되어 지방의 한 부부 사이의 편지라는 점과 특히 남성에 의해 한글로 쓰였다는 점에서 일반 백성들에게 한글의 보급과 확산이 상당히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음을 시사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문헌 자료다. '나신걸 언간'에는 남편이 함경도 변방에 군관으로 나가 있으면서 부인에게 의복을 보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으며, 또한 농사일과 집안일을 당부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런데 유독 눈길을 끄는 부분은 편지 내용에 "또 분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가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고"라고 하여 '粉하고 바늘 여섯 개를 보내며, 집에도 못 가니 민망한 일'이라고 하여 멀리 변방에 나가 있는 남편이 회덕 집에 있는 아내에게 애틋하고 절절한 마음을 전하는 대목에서는 오늘날 부부의 정서에 비교해 더욱 훈훈하고 도탑다.

'나신걸 언간'은 2012년 5월 가정의 달, 그중에서도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날을 기념하여 정한 21일 '부부의 날'에 공개됨으로써 530년 전 부부의 살가운 정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대전시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나신걸 언간'을 최근 문화재청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함으로써 언간이 한글 반포 이후 언어생활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다시 한번 평가받게 되었다.

그러한 때에 대전시립박물관에서 3월 24일부터 5월 28일까지 '나신걸 언간'을 전시 중이어서 반갑다. 특히 대전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 동춘당 송준길 가문의 선비 정신이 깃들어 있으며, 낙향 후 고향 회덕에서 여생을 보낸 제월당 송규렴 가문의 삶과 문화를 품고 있음을 언간을 통해 알려주는 역사와 전통을 지닌 고장이어서 뜻깊다. 언간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언어와 생활문화에 스며있는 지혜와 성찰을 살펴보는 이유가 분명한 오늘이다.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기고]대한민국 지방 혁신 '대전충남특별시'
  2. 금강환경청, 자연 복원 현장서 생태체험 참여자 모집
  3. "방심하면 다쳐" 봄철부터 산악사고 증가… 대전서 5년간 구조건수만 829건
  4. [썰] 군기 잡는 박정현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5. 기후정책 질의에 1명만 답…대전 4·2 보궐선거 후보 2명은 '무심'
  1. 보은지역 보도연맹 희생자 유족에 국가배상 판결 나와
  2. 안전성평가연구소 '국가독성과학연구소'로 새출발… 기관 정체성·비전 재정립
  3. 지명실 여사, 충남대에 3억원 장학금 기부 약속
  4. 재밌고 친근하게 대전교육 소식 알린다… 홍보지원단 '홍당무' 발대
  5. '선배 교사의 노하우 전수' 대전초등수석교사회 인턴교사 역량강화 연수

헤드라인 뉴스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정국에서 펼쳐지는 첫 선거인 4·2 재·보궐 선거 날이 밝았다. 충청에선 충남 아산시장과 충남(당진2)·대전(유성2) 광역의원을 뽑아 '미니 지선'으로 불리는 가운데 탄핵정국 속 지역민들의 바닥민심이 어떻게 표출될지 관심을 모은다. 이번 재·보궐에는 충남 아산시장을 포함해 기초단체장 5명, 충남·대전 등 광역의원 8명, 기초의원 9명, 교육감(부산) 1명 등 23명을 선출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놓고 여야 간 진영 대결이 극심해지면서 이번 재·보궐 선거전은 탄핵 이슈가 주를 이뤘다. 재·보궐을 앞..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과 관련,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이 ‘전원일치’이면 이유의 요지를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을 낭독한다. 헌법재판소의 실무지침서인 ‘헌법재판 실무제요’ 명시된 선고 절차다.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리면 주문 먼저 읽은 후에 다수와 소수 의견을 설명하는 게 관례지만, 선고 순서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재량에 달려있어 바뀔 수 있다. 선고 기일을 4일로 지정하면서 평결 내용의 보안을 위해 선고 전날인 3일 오후 또는 선고 당일 최종 평결, 즉 주문을 확정할 가능성이 크다. 평결은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이 의견을..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제4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는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이하 소호은행)이 1일 기자회견을 열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전국 최초의 소상공인 전문은행 역할을 지향하는 소호은행은 향후 대전에 본사를 둔 채 충청권 지방은행의 역할을 일부 수행하며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소호은행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상공인 맞춤형 금융서비스 계획을 발표했다. 컨소시엄을 이끄는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KCD) 대표는 "대한민국 사업장의 절반 이상이 소상공인, 대한민국 경제 활동 인구의 4분의 1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 3색의 봄 3색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