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막론하고 매장과 함께 표식을 해 둔다. 묘표에는 함께 묻는 관이나 묘지석(墓地石)이 있고, 주위에 세워두는 비석 등이 있다. 거기에 망자의 이름, 생몰일, 가계도, 직급, 업적, 유언, 기리는 문장 등을 새긴다. 묘비명(墓碑銘), 묘비문(墓碑文), 묘갈명(墓碣銘)이라고 한다. 당연히 오래오래 알리기 위한 것이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백비(白碑)가 있다. 하얀 비석이다. 무자비(無字碑) 혹은 몰자비(沒字碑)로도 불린다. 단순히 무덤이 있다는 표시만 해 둔 것일까? 비석(碑石)은 당연히 뭔가 적어서 후세에 알리기 위한 것 아닌가? 용도를 무색케 한다. 쓸 말이 없거나 너무 많아, 아무것도 적지 않은 경우도 있겠다 싶다. 중국 명나라 13대 황제 만력제 신종(萬曆帝 神宗 1573~1620재위), 당나라 측전무후(測天武后, 624~705)의 비석도 백비로 알려져 있다. 신종은 무위(無爲)의 도를 설파하기 위해, 측전무후는 유언으로 비워두라 했다 한다. 자신의 공이 적을 수 없을 만큼 많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쨌거나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음을 본다.
전남 장성에 있는 백비의 주인공은 조선 3대 청백리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박수량(朴守良, 1491 ~ 1554)의 묘비(전남기념물 제198호.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소재)이다. 벼슬 중에도 부모 봉양하기 위해 여러 차례 지방관을 자청한 효자이며, 일절 축재하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 중종·인종·명종실록에 90여 개의 기사가 실려 있다. 30여 년의 관리 생활에도 변변한 집 한 칸이 없었으며, 부엌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 날도 많았다 한다. 곧으면서 신중하고 청렴결백하여 염근(廉謹)함이 여러 차례 거론된다. 명종조에는 청백리 3인, 염근리 33인에 선정되기도 한다. 사후에 상사 치를 경비도 없어, 관인들로 호송케 하고 모든 장례비용을 나라가 지급해주었다. 그 때 백비도 하사하는 데, 비에 글을 새기는 것은 오히려 박수량의 청백함에 누가 된다 생각하여 무자비 그대로 세우게 하였다 전한다. 현재까지 청백리의 상징이 되고 있다. 후손의 가슴에도 별을 심어주는 일이다.
조선시대 청백리는 청렴하고 강직한 사람을 의정부, 사헌부, 사간원 등에서 추천, 임금 결재로 의정부가 결정한다. 후세에 귀감이 될 이상적인 관리에게 부여되는 칭호이다. 강효석(姜斅錫. 1869~1946, 학자)의 <전고대방(典故大方)>에 의하면 조선의 청백리는 217명이다. 1대가 청백리 되는 것이 3대가 영의정 역임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요, 말같이 쉽지 않다는 뜻일 게다.
지금도 '청백리상'을 제정, 공무원 및 공무원 신분에 준하는 사람 중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1981년 국가공무원법에 관계 규정을 삽입, 그 해 5월 처음 수여하였다. 퇴직자나 순직자도 포함된다. 제정목적은 조선시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청렴·정직한 봉사자세로 공직사회에 귀감이 될 뿐만 아니라 사표가 되어 후세까지 길이 전할 수 있는 공직자상 정립에 있다.
상을 통해 계도하고 선양하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다만, 왜곡되지 않도록 선정과정도 상의 취지에 맞도록 해야 한다. 상의 취지에 반하여 늘 시비가 엇갈린다. 비위 사실이 드러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근자에도 엉터리 청백리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으로 구속된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감사 이야기다. 그는 2021년 4월 24일과 28일 각각 현금 3000만 원, 합계 6000만 원을 마련, 300만 원씩 민주당 의원 20명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말에는 선거운동 독려를 위해 2000만 원을 마련했고, 이 돈은 50만원씩 쪼개 20명에게 두 차례 전달했다 한다. 그해 11월 사단법인 한국감사협회가 '2021 한국감사인대회'에서 '자랑스러운 감사인상 금상'과 '청백리상'을 그에게 수여했다. 돈 봉투 돌린 지 불과 5개월 뒤의 일이다. 청백리가 아니라 돈 잘 써서 받은 상이 아닌지, 공정한 심사였는지 일각에서 의아해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국가위상에 맞지 않게, 연고, 친분, 온정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으며, 알선수재, 청탁, 횡령배임, 이권개입으로 업무수행이 좌지우지되고 있음을 본다. 모두 부질없는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어떠한 물질적 풍요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공덕 쌓느니만 못하다. 공덕은 백색이다. 우리 모두 순백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다시 한 번 음미해 본다. 명심보감 계선편에 나오는 말이다.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돈을 모아 자손에게 물려주어도 반드시 자손이 능히 다 지키지 못하고, 책을 모아 자손에게 남길지라도 반드시 자손이 능히 다 읽을 수 없으니, 남모르게 덕을 쌓아 그것으로써 자손의 계책으로 삼음만 같지 못하니라.(司馬溫公 曰, 積金以遺子孫 未必子孫 能盡守, 積書以遺子孫 未必子孫 能盡讀, 不如積陰德於冥冥之中 以爲子孫之計也)" 논어 이인편에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하지 않았는가.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