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
정치학자들은 사회의 효율적인 상호작용을 위해 게임의 규칙인 제도에 대한 신뢰를 강조한다. 특히 한 사회의 행복 수준을 설명해주는 핵심 변수로서 정부라는 특별한 제도에 주목한다. 정부는 국가라는 정치공동체 안에서 사회구성원의 순응을 요구하는 다양한 제도들을 설계하고 적용하며 최종 해석을 내리는 합법적 강제력을 가진 유일한 기관이다. 정부가 설계한 게임에 참여하는 일반 국민에게 비친 게임의 설계자이자 심판자의 인상은 그 사회의 공정성과 사회적 효율성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잣대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 게임의 설계자이자 심판자인 정부가 공정하다고 믿으면, 다른 사회구성원을 신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른 구성원이 반칙을 범하면 공정한 심판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회일수록 사회적 갈등 수준은 낮고 행복 수준은 높다는 것을 다양한 연구 결과가 증명해주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물질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행복 수준이 낮은 이유는 정부 신뢰가 낮은 데서 찾을 수 있다. 정치학자들은 정부 중에서도 검찰을 포함한 사법 체계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느 사회든 이념 지향적인 정당에 기반을 두고 전쟁처럼 치르는 선거를 통해 구성되고 임기 내내 대립하는 입법부 신뢰는 낮을 수밖에 없다. 반면, 국가의 공정성을 상징하는 최후의 보루가 사법 체계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2023년 3월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이 발표한 '2023 번영 지수'를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 지수가 조사대상국 167개국 중 100위로 나타났다. 더욱 비참한 것이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가 155위로 최하위권이라는 점이다. 이 순위는 2013년 146위에서 9계단 하락한 결과로 사법 체계의 신뢰가 점차 퇴보하는 것을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해온 사법 제도 신뢰 조사 결과도 연속해서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각종 설문조사 결과는 사법 체계 중에서 검찰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2022년 4월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10개 정보·사정기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 결과 검찰청에 대한 부정 평가가 응답자의 7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21년 미디어오늘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실시한 4대 형사사법기관 신뢰도에서는 공수처(46%), 법원(42%), 검찰(37%), 경찰(31%)의 순으로 나타났다. 2023년 2월 오마이뉴스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현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을 얼마나 신뢰하십니까?"라는 질문에 56.4%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중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의 응답률이 46.2%에 달해 검찰에 대한 불신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현 정부의 검찰이 지난 정부 때와 비교할 때 신뢰성 면에서 조금이라도 더 좋아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십니까"의 질문에 "더 나빠졌다"는 응답이 54.3%를 기록했다. 반면, "더 좋아졌다"는 응답은 39.3%에 그쳤다.
2023년 1월 쿠키뉴스 의뢰로 데이터리서치의 설문조사 결과 '가장 큰 정치적 힘을 가진 집단'을 묻는 설문에 검찰(35.1%), 국회의원(31.4%), 언론(13.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공정과 상식"을 캐치프레이즈로 걸고 출범한 윤석열 정부 임기 1년 동안 검찰은 국민의 신뢰와는 멀어지는 대신 최고의 정치적 권력을 가진 기관으로 등극한 것이다. 국민에게 상식처럼 되어버린 검찰과 사법 체계의 정치화가 대통령이 말하는 상식을 의미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가 '한 사회가 정의로운가(공정한가)?'의 질문에 대한 간접적 답변이라면 윤석열 정부의 공정과 관련된 성적표는 과락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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