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번에 내린 비는 오랜 가뭄을 해소해 준 일등 공신이었다. 덕분에 텅 비었던 저수지에 모처럼 빗물이 철렁철렁 들어차는 모습은 특히 농민들에게 환한 웃음꽃을 피우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어린이날을 맞아 뿌리공원 수변 무대에서 [환, 뮤지션 열린 음악회]를 연다는 취재 요청의 안내문을 받은 바 있기에 그 음악 단체의 대표님에게 서둘러 전화했다. "비가 보통 오는 게 아닌데 오늘 공연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보다 더한 비가 쏟아져도 오늘 공연은 예정대로 합니다!" 카메라를 챙겨 뿌리공원으로 가는 313번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전 중구 뿌리공원로 79에 있는 뿌리공원은 민과 관이 유기적인 협조체제로 조성된 전국 유일의 효 테마공원이다.
자신의 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성씨별 조형물과 사신도와 12가지를 형상화한 뿌리 깊은 샘물, 각종행사를 할 수 있는 수변 무대, 잔디광장과 공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팔각정자 뿐만 아니라 삼림욕장, 자연관찰원 등 다양한 시설이 잘 갖추어진 체험학습의 산교육장이다.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2시에 맞춰 뿌리공원에 도착했다. 폭우로 범람하는 만성교 하천을 건너자니 저 멀리서 향기로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도착한 수변 무대.
평소처럼 날씨가 좋았더라면, 더욱이 어린이날이었기에 가족 동반 손님들로 가득 찼을 수변 무대는 하지만 차가운 날씨처럼 분위기 역시 썰렁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환, 뮤지션 열린 음악회]는 예정대로 강행되었다. 하모니카 연주와 국악 판소리, 퓨전댄스 가요 장구, 오카리나 연주, 통기타 공연, 시 낭송과 음악, 색소폰 연주와 가요, 드럼 연주와 노래 등의 열연에 수변 무대는 물론 근처의 연못에서 쏟아지는 봄비를 즐기던 오리들까지 덩달아 음악이 주는 에너지를 흠뻑 맛볼 수 있었다.
이날 비를 흠뻑 맞으며 열연을 한 오욱환, 박태구, 최정규, 황혜경, 백송희, 김명신, 이영숙, 박권식, 허웅, 장윤진 님 등 예술인과 시 낭송인들의 수고가 유독 도드라졌다.
그러나 공연은 더욱 거세지는 빗발에 그만 마이크와 방송기계 등이 에러를 연발하는 바람에 예정 시간보다 30분 일찍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방송기기 철수를 도운 뒤 뿌리공원을 나와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술잔을 마주하며 오욱환 대표와 잠시 환담을 가졌다. "다른 곳이었다면 진작 철수하든가 다음으로 공연을 미루거나 했을 것인데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데도 '환, 뮤지션'에서는 유독 공연을 강행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흔쾌한 즉답이 돌아왔다. "공연은 관객과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어겨선 안 됩니다. 술꾼들이 즐겨 하는 사자성어 농담에 우중필주(雨中必酒)라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그 말을 인용하자면 저희 음악 단체의 기본은 바로 '우중필연('雨中必演) 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공연(公演)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의미를 담은 비유죠. 히트한 가요 중에 '비가 와도 좋아 눈이 와도 좋아 바람 불어도 좋아 좋아 좋아 당신이 좋아~'라는 유행가도 있지 않습니까? 저희 단체는 그 노래처럼 오로지 팬들을 만나는 게 좋아서 공연을 하는 겁니다. 앞으로도 저희 '환' 뮤지션을 찾아주시는 분들께는 원근불구(遠近不拘), 청탁불구(淸濁不拘), 주야불구(晝夜不拘)의 3불(不) 정신으로 더 가까이 찾아뵙고 더 멋진 공연을 그것도, 봉사 마인드로 보답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를 강조했다.
순간, 관객과의 약속을 그야말로 '칼 같이' 지키려는 의지의 오욱환 대표를 새삼 발견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속담이 오버랩 되었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찾아오지 않는다."
홍경석/ 작가, <두 번은 아파 봐야 인생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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