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 世窓密視] 우중필연

  • 오피니언
  • 홍키호테 세창밀시

[홍키호테 世窓密視] 우중필연

손님이 오지 않는 집에는

  • 승인 2023-05-06 20:53
  • 수정 2023-05-11 22:22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5월 5일은 어린이날이었다. 그래서 전국 지자체와 각종 단체에서는 미래의 꿈나무인 어린이날 행사를 많이 준비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폭우가 변수로 등장했다. 강풍을 동반한 많은 비가 쏟아진 건 대전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이번에 내린 비는 오랜 가뭄을 해소해 준 일등 공신이었다. 덕분에 텅 비었던 저수지에 모처럼 빗물이 철렁철렁 들어차는 모습은 특히 농민들에게 환한 웃음꽃을 피우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어린이날을 맞아 뿌리공원 수변 무대에서 [환, 뮤지션 열린 음악회]를 연다는 취재 요청의 안내문을 받은 바 있기에 그 음악 단체의 대표님에게 서둘러 전화했다. "비가 보통 오는 게 아닌데 오늘 공연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보다 더한 비가 쏟아져도 오늘 공연은 예정대로 합니다!" 카메라를 챙겨 뿌리공원으로 가는 313번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전 중구 뿌리공원로 79에 있는 뿌리공원은 민과 관이 유기적인 협조체제로 조성된 전국 유일의 효 테마공원이다.



자신의 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성씨별 조형물과 사신도와 12가지를 형상화한 뿌리 깊은 샘물, 각종행사를 할 수 있는 수변 무대, 잔디광장과 공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팔각정자 뿐만 아니라 삼림욕장, 자연관찰원 등 다양한 시설이 잘 갖추어진 체험학습의 산교육장이다.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2시에 맞춰 뿌리공원에 도착했다. 폭우로 범람하는 만성교 하천을 건너자니 저 멀리서 향기로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도착한 수변 무대.

평소처럼 날씨가 좋았더라면, 더욱이 어린이날이었기에 가족 동반 손님들로 가득 찼을 수변 무대는 하지만 차가운 날씨처럼 분위기 역시 썰렁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환, 뮤지션 열린 음악회]는 예정대로 강행되었다. 하모니카 연주와 국악 판소리, 퓨전댄스 가요 장구, 오카리나 연주, 통기타 공연, 시 낭송과 음악, 색소폰 연주와 가요, 드럼 연주와 노래 등의 열연에 수변 무대는 물론 근처의 연못에서 쏟아지는 봄비를 즐기던 오리들까지 덩달아 음악이 주는 에너지를 흠뻑 맛볼 수 있었다.

이날 비를 흠뻑 맞으며 열연을 한 오욱환, 박태구, 최정규, 황혜경, 백송희, 김명신, 이영숙, 박권식, 허웅, 장윤진 님 등 예술인과 시 낭송인들의 수고가 유독 도드라졌다.

그러나 공연은 더욱 거세지는 빗발에 그만 마이크와 방송기계 등이 에러를 연발하는 바람에 예정 시간보다 30분 일찍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방송기기 철수를 도운 뒤 뿌리공원을 나와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술잔을 마주하며 오욱환 대표와 잠시 환담을 가졌다. "다른 곳이었다면 진작 철수하든가 다음으로 공연을 미루거나 했을 것인데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데도 '환, 뮤지션'에서는 유독 공연을 강행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흔쾌한 즉답이 돌아왔다. "공연은 관객과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어겨선 안 됩니다. 술꾼들이 즐겨 하는 사자성어 농담에 우중필주(雨中必酒)라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그 말을 인용하자면 저희 음악 단체의 기본은 바로 '우중필연('雨中必演) 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공연(公演)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의미를 담은 비유죠. 히트한 가요 중에 '비가 와도 좋아 눈이 와도 좋아 바람 불어도 좋아 좋아 좋아 당신이 좋아~'라는 유행가도 있지 않습니까? 저희 단체는 그 노래처럼 오로지 팬들을 만나는 게 좋아서 공연을 하는 겁니다. 앞으로도 저희 '환' 뮤지션을 찾아주시는 분들께는 원근불구(遠近不拘), 청탁불구(淸濁不拘), 주야불구(晝夜不拘)의 3불(不) 정신으로 더 가까이 찾아뵙고 더 멋진 공연을 그것도, 봉사 마인드로 보답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를 강조했다.

순간, 관객과의 약속을 그야말로 '칼 같이' 지키려는 의지의 오욱환 대표를 새삼 발견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속담이 오버랩 되었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찾아오지 않는다."

홍경석/ 작가, <두 번은 아파 봐야 인생이다> 저자

두아빠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서산 부석사 불상 친견법회, 한일 학술교류 계기로"
  2. 대전 학교 내 성비위 난무하는데… 교사 성 관련 연수는 연 1회 그쳐
  3. [입찰 정보] '테미고개·서대전육교 지하화'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 12공구 공고
  4. 2023년 대전·세종·충남 전문대·대학·대학원 졸업생 취업률 전년比 하락
  5. ‘달콤해’…까치밥에 빠진 직박구리
  1. [사설] '대한민국 문화도시' 날개 달았다
  2. [사설] 교육 현장 '석면 제로화' 차질 없어야
  3.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 대전서 만난다
  4. 대전 경제기관·단체장 연말연시 인사이동 잇따라
  5. 대전 동구, 축제로 지역 이름 알리고 경제 활성화 기여까지

헤드라인 뉴스


韓 권한대행도 탄핵… 대통령·국무총리 탄핵 사상 초유

韓 권한대행도 탄핵… 대통령·국무총리 탄핵 사상 초유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27일 탄핵 됐다. 대통령에 이어 권한대행마저 직무가 정지되는 헌정 사상 유례없는 일이 발생한 것으로, 순서에 따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국회가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무기명 투표를 진행한 결과, ‘국무총리(한덕수) 탄핵 소추안’은 재적의원 300명 중 192명이 참석해 찬성 192표로 가결됐다. 표결에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 안건은 국무총리 한덕수 탄핵소추안이다. 그러므로 헌법 제65조2항에 따라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밝혔다...

세종시 `주택 특공` 한계...수도권 인구 유입 정체
세종시 '주택 특공' 한계...수도권 인구 유입 정체

현행 세종시 주택 특별공급 제도가 수도권 인구 유입 효과를 확대하는 데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해오던 이전 기관 종사자 특별공급 제도가 2021년 5월 전면 폐지되면서다. 문재인 전 정부는 수도권에서 촉발된 투기 논란과 관세평가분류원 특공 사태 등에 직격탄을 맞고, 앞뒤 안 가린 결정으로 성난 민심을 달랬다. 이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를 본 이들이 적잖다. 중앙행정기관에선 행정안전부 등의 공직자들부터 2027년 제도 일몰 시점까지 특별공급권을 가지고 있던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고개를 떨궜다. 세종시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같..

AI 디지털 교과서 논란...전국 시도교육감 엇박자
AI 디지털 교과서 논란...전국 시도교육감 엇박자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명의의 건의문이 17개 시·도 간 입장 조율 없이 제출돼 일부 지역의 반발을 사고 있다.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은 12월 26일 이와 관련한 성명을 통해 "우리 교육청은 그동안 AI 디지털 교과서의 현장 도입에 신중한 접근을 요구해왔다. 시범 운영을 거쳐 점진적으로 도입하자는 의견"이라며 "AI 디지털 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찬성한다"란 입장으로 서두를 건넸다. 이어 12월 24일 교육감협의회 명의의 건의문이 지역 교육계와 협의 없이 국회에 제출된 사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독감과 폐렴 함께 예방해 주세요’ ‘독감과 폐렴 함께 예방해 주세요’

  • ‘달콤해’…까치밥에 빠진 직박구리 ‘달콤해’…까치밥에 빠진 직박구리

  •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 대전서 만난다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 대전서 만난다

  • 즐거운 성탄절 즐거운 성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