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북이가 등장할까?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느리기만 한 것일까? 귀토지설에 등장하는 별주부같이 미련한 것일까? 거북은 바다 생물중 수명이 가장 길고, 엄청나게 많은 알을 낳는다. 때문에, 장수, 다산 등의 상징으로 우리민속 여기저기에 등장한다. 그런 탓에 매우 친밀하게 생각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쉬이 만나는 동물은 아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거북이는 12과 240종이나 된다. 우리나라에는 4종이 알려져 있는데, 바다거북, 장수거북, 남생이, 자라가 그것이다. 예전엔 남생이는 귀(龜)라 하고, 자라는 별(鼈)이라 하였다.
고분벽화에도 사신도 중 하나로 등장한다. 사신은 청룡, 주작, 백호, 현무로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현무는 거북이와 뱀의 합치다. 많은 고구려 고분은 물론, 백제의 공주 송산리고분, 부여 능산리고분의 벽화에 그려져 있다.
무덤의 네 방향을 지키는 수호신역할도 하지만, 사악한 기운을 차단해 주기도 한다. 죽은 이의 영혼을 안내하는 역할도 한다. 신과 인간의 매개자, 신탁을 부여받은 사자인 것이다. 때문에 묘지비석 받침돌에 거북 모양이 등장한다. 예지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점사에도 쓰였다. 불에 구운 거북의 등껍질에 나타나는 균열로 보는 거북점이 이에 해당한다.
영물로 생각한 탓에, 해귀도(海龜圖), 신귀도(神龜圖), 서귀공작도(瑞龜孔雀圖), 서귀도(瑞龜圖), 쌍귀도(雙龜圖), 현무도(玄武圖), 십장생도(十長生圖) 등에도 등장한다. 영물은 사령(四靈)이 대표적인데, 기린, 봉황, 용, 거북 등이다. 여기서 기린(麒麟)은 성인이 세상 나올 때, 그 전조로 나타난다는 성스러운 동물이다. 따라서 거북이만 유일하게 실존할 뿐, 나머지는 모두 상상의 동물이다.
거북은 거북선으로도 우리와 친숙하다. 거북선 기사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25권, 태종13년 2월 5일 갑인 첫 번째 기사다. "임진도(臨津渡)를 지나다가 거북선(龜船, 거북모양으로 생긴 전함)과 왜선(倭船)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上過臨津渡, 觀龜船、倭船相戰之狀。)" 임진도는 임진강 나루이다.
거북선은 노 젓는 노역공간과 전투공간이 나누어진 2층 구조로 된 판옥선에 덮개를 덮은 구조이다. 우리 전술은 배끼리 부딪쳐 해적선을 깨트리는 것이었으나, 해적과 왜구는 갑판위로 뛰어올라 펼치는 육박전이 주 전술이었다. 육박전에 약한 탓이었는지, 적이 아군 선상에 뛰어오르지 못하도록 덮개를 창안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다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에 의해 전면에 등장하면서 연전연승의 무적 전투선이 된다.
세계 1위의 조선업에도 기여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래 산업의 하나로 조선업을 지목, 여러 기업에 권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청와대에서 정주영(鄭周永, 1915 ~ 2001, 현대그룹 창업주)과 만나, 불굴의 투사라 추켜세우며 설득한다. 자금이 문제였다. 세계 유수의 기업에 지원 요청했지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정주영이 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 의하면, 런던으로 A&P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톰 회장을 찾아간다. 일주일 만에 어렵사리 만났으나 그 역시 경험이 없고, 상환 능력도 없는 현대와 한국 정부를 불신한다. 그때 정주영 특유의 기지가 빛난다. 바지주머니에서 500원 권 지폐를 꺼내 보여주며 설득했다. 500원 권에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다. 당신네 나라가 조선업을 시작한 1800년대 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다는 주장이었다. 무궁무진한 한국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흔쾌히 승낙하였다. 덕분에 1972년 현대미포조선이 창사되어 오늘에 이른다.
1966년부터 발행되어 당시에 사용되었던 500원 권 지폐 |
사람 역시 엉뚱한 사유로 생존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닐까? 출산율 저하다. 인구 폭발 걱정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살아있는 거북이는 살려야 하듯, 사람도 살려야 한다. 어린이 날, 더 많은 어린이가 보고 싶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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