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어린이였기에 어린이날을 누렸다. 동요를 부르고 동화를 읽으며 꿈과 상상력을 키웠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동서양의 민담이나 동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나쁜' 늑대 이야기다. 지금이야 대세가 '아기상어'이지만 옛날에는 '늑대인간'이었다. '울음 뚝! 늑대 온다!'가 일상사였다. 왜 우리와 친숙한 '개'가 아닌 위협적인 늑대였을까?
늑대는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서식했던, 인간의 가축을 넘어 인간까지도 공격하는 위험한 존재였다. 그러니 곳곳의 신화나 민담에 변신한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늑대인간은 고대부터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변신한 포식자의 최초 모티브는 길가메시 서사시라고 한다. 길가메시를 흠모했던 여신 이슈타르가 애정을 표시한다. 길가메시는 이슈타르가 옛 연인이던 목동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늑대로 변신시켰음을 알고는 거절했다. 이슈타르는 극도로 분노했지만, 반신(半神)인 길가메시를 함부로 죽일 수 없어 아버지인 아누 신에게 부탁하여 하늘의 황소를 지상에 풀어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인 리카온 전설에도 늑대인간이 등장한다. 펠라스고스의 아들 리카온은 제우스에게 희생된 소년의 유골을 제물로 바치는 바람에, 격노한 제우스는 리카온과 그의 아들을 늑대로 만들어버린다.
늑대인간을 향한 인간의 애정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키플링의 '정글북'(1985)의 모글리, 영화 '런던의 늑대 인간'(1981), '울프'(1994)의 잭 니콜슨, 아니면 최근의 '놈은 우리 안에 있다'(2021)가 떠오른다. 해리포터의 팬이라면 Fenrir Greyback이 떠오르겠다. 그는 어린 시절 해리의 스승이자 아버지의 친구인 리머스 루핀을 물어 늑대 인간으로 변신시켰다. 그런데 루핀은 숨어 있다가 보름달이 뜨면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만 자기 힘을 쓰는 '좋은' 늑대인간이다.
이야기 속의 이런 늑대가 인간의 자연 정복으로 멸종되었다가 근래에 다시 유럽 등지에서 출몰한다고 한다. 늑대는 양과 염소를 기르는 농부에게는 동화 속과는 달리 달갑잖은 손님일 수 있다. 하지만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자연의 이치다. 멧돼지가 이따금 우리의 논밭을 엉망으로 만드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듯, 늑대가 숲속을 벗어나 우리가 바라지도 않은 짓을 하는 것에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늑대가 사랑하는 고양이나 가축을 죽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당장 온 나라에 살포명령을 내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야생 맹수들은 아프리카의 대초원뿐 아니라 아시아와 북미 지역에서도 인간의 생활공간을 공유한다. 많은 관광객들이 캐나다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야생에서 늑대를 관찰할 수 있어서다. 거기서도 겁쟁이 야생 동물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발 달린 사냥꾼이 위협적인 존재다.
인간은 부단히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화했다. '경작'되지 않은 땅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이는 인간이 경제적인 용도로 들, 숲, 초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또한 인간에게 부적합하고 돈벌이가 안 되는 것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종(種)의 다양성도 온전한 환경에서 그 자체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오월은 푸르고 아이들은 자란다. 5월만큼은 아이들과 '늑대'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과 식물과 동물이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21세기형 늑대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키우는 시간이면 좋겠다.
이성만 배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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