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해동건곤 존주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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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해동건곤 존주대의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 승인 2023-04-26 09:43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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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우 회장
대전 동구 가양동 우암사적공원 유물관에 들어서면 '해동건곤 존주대의'라는 글귀가 보인다. 이글은 현종 5년 1664년 5월 단오에 '해동건곤 존주대의(海東乾坤 尊周大義)'라 고 쓴 휘호(揮毫)로 노나라 역사서 춘추에서 인용한 글귀다. 이 휘호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있는데 비단 위에 먹으로 쓴 크기 101.2x50.9㎝ 글이다.

이글은 조선시대 17세기의 강건한 글씨 풍을 주도한 대표 인물 우암 송시열(1607~1689)의 글씨다. '해동(즉 조선)의 하늘과 땅 모두 중국 요순시대(堯舜時代)의 태평성대를 이어받은 이상적 국가 주(周)나라(명나라)의 정신을 존중하는 큰 뜻을 갖는다'는 뜻의 이 여덟 글자는 조선중화주의(朝鮮中華主義)의 대표적 인물인 성리학자 송시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동시에 그의 서예에 대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강한 필획과 흘림 기운이 큰 강건한 필치 및 굵직한 근골을 갖춘 필획을 시원하게 뽑아냈다. 두툼한 필획의 직접적인 영향은 바로 앞 시기에 활동한 서예가 한호(韓濩? 1543-1605)의 대자서로부터의 영향이라 한다.

1689년 사약을 받은 노론 지도자 우암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살던 화양동에 명 황제 모실 만동묘(萬東廟)를 만들라.' 명나라가 망하고 1주갑(60년)이 지난 1704년 제자 권상하는 스승 뜻을 실현해 냈다.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 조선을 살려준 명나라 신종 만력제와 마지막 의종 숭정제를 기리는 사당이었다.

그해 정월 7일 권상하가 만동묘를 세우고 150여 유생들과 첫 제사를 올렸다. 사흘 뒤인 1월 10일 숙종이 느닷없이 어전회의에서 "명나라가 망한 지 올해 3월로 60년이다. 숭정 황제가 나라를 잃으니 울음이 솟구친다. 백성들이 그 은혜를 잊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그해 3월 19일 밤 12시 30분 숙종은 창덕궁 후원에 임시 제단을 만들고 숭정제 제사를 전격 거행했다. 그날은 숭정제 의종이 자살한 바로 당일이었다. 그해 11월 숙종은 후원 깊숙한 곳에 제단을 만들고 이름을 대보단(大報壇)이라고 정했다. 이듬해 3월 9일 숙종은 대보단에서 임진왜란에 원군을 보낸 만력제 제사를 지냈다.



조종암(朝宗巖)은 경기도 가평군 하면 대보리에 있는 큰 바위 암벽에 글씨를 새긴 것이다. 숙종 10년(1684)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보내 준 명나라에 대한 은혜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당한 굴욕 잊지 말자는 뜻의 글씨를 바위에 새겨 넣은 암각서다. 당시 가평군수였던 이제두와 유생 허격, 백해명이 주도해 조성했다. 글씨는 모두 22자로 정면에 선조의 손자인 낭성군 이우가 쓴 ‘조종암’과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 글씨인 ‘사무사’ 그 아래 조선 선조의 글씨인 ‘만절필동 재조번방’과 조선 효종의 글을 송시열이 옮겨 쓴 ‘일모도원 지통재심’ 순조 4년(1804) 조종암을 세운 이유와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조종암기실비’가 세워져 있다. 이들은 병자호란 이후 오랑캐인 청나라를 멀리하고 사라진 명나라 문화를 이어받았다는 ‘숭명배청’ 사대주의 모화사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재들이다.

광해군은 중국에서 명나라와 청나라가 교체되는 시기에 적절한 외교로 청나라의 침입을 막았다. 병자호란은 갑자기 닥친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에 앞서 40여 년 전에는 임진왜란을 겪었고 불과 그 10여 년 전에도 정묘호란을 겪었다. 정묘호란 이후 청나라는 각종 경제적 요구는 물론, 명나라를 치는 데 협조하라며 수시로 조선을 압박했다. 이런 와중에도 인조 정권은 시종일관 국방이나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외면하고 오직 자신들의 권력 확장에만 열을 올렸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인조 정권이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좀 더 유연하게 대처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인조 정권은 임진왜란 이후 급변하는 주변 정세에는 눈을 감았다. 일국의 국가수반인 국왕의 시대적 착오가 국가에 어떤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었다. 떠오르는 청을 오랑캐라 무시하고 명분에만 치우쳐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 대에 이르러 청에 의해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국민은 그런 잘못된 위정자들로 인한 고통을 그대로 감내하게 됐다. 북벌을 추진하던 효종의 죽음 이후 ‘해동건곤 존주대의’라는 명분에 치우쳐 주변 정세와 국민의 안위에 무심했던 위정자들로 인해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역사를 다시 반복하게 됐다. 요즘 세상이 하 수상하다. 이럴수록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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