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갈 길은 멀다. 여전히 지역을 초점에 맞춘 기부문화가 획기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하긴 섣부르다. 단지 홍보만을 위한 유명인 기부나 이색 답례품 경쟁은 고향사랑기부제 본질을 흐리고 있다. 고향사랑기부제 운영 100일을 맞아 그동안 미비한 점과 개선 사항 등을 짚어 지역기부문화의 정착과 확산을 위한 방안을 찾아본다. <편집자주>
1. 갈 길 먼 고향사랑기부제, 현 상황은?
2. 일본 고향세와 고향사랑기부제 차이는?
3. 자리 잡은 일본 고향세, 특별한 이유는?
4. 고향사랑기부제 이젠 실질적 변화 절실
일본 사가현의 다양한 고향세 지정기부 프로젝트. [출처=후루사토 초이스] |
하지만 한 기부자가 "자신의 기부금이 사가현 내 천연기념물을 보호하는 데 쓰였으면 좋겠다"고 요청하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이후 사가현은 민·관이 협력하는 민간 지정 기부형 고향세 'GCF(거버먼트 크라우드 플랫폼)' 시스템을 적극 활용했다. 기부자들이 관심 있는 주제나 지역 현안을 고향세와 매칭해 기부 효능감을 높였고 그 중심에는 NPO(Non-Profit Organization·비영리단체)들의 전략적인 기획과 홍보 마케팅, 특색 있는 지정기부가 자리를 잡았다.
NPO는 물론 자원봉사단체와 노인회, 자치회 등 CSO(Civil Society Organization·시민사회조직)도 적극 참여하면서 지정기부는 새로운 기부문화를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지역문제 해결의 새로운 방법으로 떠올랐다. 사가현의 지정기부는 큰 호응을 얻었고 일본 전역으로 확산됐다.
사가현의 고향세 성공비결과 벤치마킹할 점들을 와시사키 료코 현민협동과 협동사회추진담당 계장과 하라 히로후미 세정과 세무정책담당 계장으로부터 들어봤다. 인터뷰는 4월 21일 오전 화상으로 진행했고 통역은 현지에서 지정기부 활동을 하는 페어트래블재팬(공감만세 일본법인) 이연경 법인장이 맡았다.
일본 사가현의 대표적 지정기부 프로젝트인 1형당뇨 연구지원. [출처=후루사토 초이스] |
-일본의 고향납세는 우리에겐 성공사례로서 배울 점이 많다고 본다. 하지만 그동안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이나 개선점, 특히 노력했던 부분들이 무엇인지?
▲사가현은 2015년부터 시작한 고향납세 NPO 지정형 전부터 NPO 보조금 지원사업을 추진했다. 그때 기부자들로부터 어떤 특정한 활동에 기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어떤 단체가 아닌 특정한 활동에 대해서 기부를 하고 그런 활동을 하는 단체가 있다면 지원을 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이후 지정기부에 대한 기부자들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고 특정 활동을 벌이는 NPO를 지정해 기부하는 방법으로 고향세를 활용하는 제도를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모금 주체는 사가현이지만, 결국 주체는 NPO다. 사가현은 NPO가 자주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NPO는 자신들의 활동을 지원받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 민·관이 각자 역할에 충실한 결과라고 본다.
-모금한 고향납세를 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려주시면 좋겠다. 문화재 보존이나 교육 기관 운영 등에 사용했다고 들었는데, 특이한 활용 사례는 없는지?
▲사가현의 고향세는 NPO 등을 지정해 기부하는 구조이며, 기부는 NPO 등의 활동에 사용되고 있다. 100개가 넘는 단체가 등록되어 있어 활동 내용은 다양하다. 예를 들면, 현지 노인의 이동지원을 하는 지역 밀착형 단체부터 해외 난민 지원 등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단체까지 폭넓은 활동이 있다. 노인 이동지원의 경우 한국도 그렇겠지만 노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운전면허 반납과 공공버스 운행도 줄어 노인 이동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지정기부가 출발했다. 해외 난민 지원 등 국제활동은 고향세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가현 시민들의 국제적 인식 증진 차원에서도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사가현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 아래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활동들이 이뤄지고 있다.
- 지금 한국은 답례품 위주로 고향사랑기부제가 운영되고 있다. 일본도 지방정부 간 답례품 경쟁이 갈수록 치열하다고 들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은 아닌지?
▲우리도 기부금의 30% 이하 답례품 제한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2019년 관련 규정이 생기기 전까지 답례품 경쟁이 심각하게 벌어졌다. 이후 치열한 답례품 경쟁이 좋지 않다는 인식이 생겨났고 제한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법률로 모금할 자격을 아예 박탈한다. 국가에서 위반 지자체에 모금할 수 없다고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엄한 규정이 생기고 나서부턴 잘 지키는 분위기다. 고향세는 답례품보다는 기부 목적이 제대로 활용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만 답례품도 지역의 경제와 연결돼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있는 만큼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본다.
일본 사가현의 대표적 지정기부 프로젝트인 전통공예 지원. [출처=후루사토 초이스] |
▲민간플랫폼을 사용하면 민간 전문가들과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특히 공무원들의 업무 부담이 준다. 지자체에서 담당 공무원 혼자서 고향세 업무를 맡으면 어려움이 크고 효과 또한 작다. 이럴 때 민간플랫폼을 활용하면 이들이 홍보역할을 충실히 하고 전략적인 접근으로 굉장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현재 우리 고향세는 30% 이하 답례품 제한이 있지만, 수수료와 발송 관리 비용까지 포함하면 50%까지 사용할 수 있다. 나머지 50%는 반드시 활동에 사용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 홍보를 더 많이 한다면 답례품 가격을 줄여야 하고 답례품에 투자한다면 홍보를 줄일 수밖에 없다. 비용 대비 어떤 효과가 있는지 따져야 하는 숙제가 있다. 때문에 민간과 협력하면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의 고향납세에서 대도시와 중소도시 간 격차 문제는 없는지 궁금하다. 현재 한국은 대도시보단 농어촌 중심도시에 고향사랑기부가 몰리고 있다. 일본의 상황은?
▲우리도 지자체 간 약간의 경쟁 아닌 경쟁이 있다. 모금 주체가 다르지 않은가. 생각으로는 단지 고향세를 더 많이 벌기 위해 다른 지역을 뺏어와야 하는 건 아니고 서로서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본다. 고향세는 지역을 위한 제도다. 때문에 도시보단 지역에 가는 편이 원칙적으로 맞지 않을까 싶다. 실제 도시광역지자체보단 기초지자체에 돈이 많이 모이는 효과들이 발생하고 있다. 사가현만 보더라도 105억 엔을 넘게 버는 기초지자체도 있다. 물론 도시들은 특산품이 없지만, 지역 목적에 맞는 시책이나 프로젝트를 지정기부 형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열심히 서로서로 경쟁하는 긍정적이면서 건강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일본의 지정 기부 방식에 공감하고 도입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도입을 가정해 한국에서 지정 기부 방식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들을 조언해준다면?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민간의 얘기를 잘 듣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제대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사가현은 NPO에 주도성과 자주성을 많이 부여하고 있다. 해낼 수 있고 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게 필수적이다. 우리는 아직 홍보나 운영에 익숙하지 않은 NPO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NPO 특성에 따라 답례품을 지정하고 발송한다. 답례품을 제공하지 않는 프로젝트도 있다. 목적과 취지가 뚜렷한 지정기부는 답례품이 없어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효과는 앞서 설명했다. 다시 말해 NPO가 자주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구조와 영역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연경 법인장은 "사가현은 원래 전국에서 관광 인지도가 하위권에 머무를 정도로 특색이 없는 지자체였는데, 지정기부 고향세 성공과 함께 NPO나 시민단체가 일하기 좋은 마을로 알려지며 전국적인 인지도도 높아졌다"며 "행정이 다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NPO들이 잘 활동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 결과다. 지정기부제 운영과 함께 민간 참여를 늘려야만 고향사랑기부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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