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탓이요'의 두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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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탓이요'의 두 열매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3-04-21 09:38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우리는 살면서 천국과 지옥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설령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라도 천국은 근심 걱정 없이 즐겁게 행복을 누리며 사는 낙원이며, 지옥은 가쁨과 즐거움 은 생각지도 못하는, 무시무시한 고통의 현장 아비규환(阿鼻叫喚)을 떠올릴 것이다.

사전적 의미를 본다 하더라도 < 천국>은 < 하느님이나 신불(神佛)이 있다는 이상 세계로 어떤 제약도 받지 아니하는, 자유롭고 편안한 곳 > 으로 나와 있고, < 지옥>은 < 큰 죄를 짓고 죽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끝없이 벌을 받는 곳으로, 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광경, 또는 그런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 나와 있다.

이와 같이 천국과 지옥은 극대 극의 말로서 행복과 불행을 논하는데 필수적으로 들어가 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천국 거는 것을 소망하고, 지옥은 싫어하면서도 실제 삶의 모습은 지옥을 가까이 하고 천국을 멀리하는 행동거지를 하고 있다. 현자는 자신들이 천국을 만들어가며 살고 있고, 우매한 자는 지옥의 고통을 자초하는 삶으로 괴로운 생활로 일관하고 있다.



<천국>과 < 지옥 >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목전 손닿는 가까운 곳에 있 다. <천국>과 <지옥>은 크게 신경 쓸 것 없이 우리 언어생활에서도 비롯된다고 하겠다. 또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 여하에 따라 < 천국>에서 살기도 하고 <지옥>에서도 산다고 하 겠디. 우리는 언어생활에서 조금만 조심하고 노력한다면 천국에서 누리는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에 < 탓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 앞에 < 내 >와 < 네 > 어느 것 을 붙이느냐에 따라 < 천국 >에서 살 수도 있고 < 지옥 >에서 살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천국과 지옥을 스스로 만드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목격했다.

천국과 지옥을 실감나게 하는 두 가족이 있었다.

내 서산여고에 재직할 때 인근에는 항상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얼굴 표정도 항상 밝게 사는 가족이 있었다. 늘 싱글벙글하는 표정들로 보아 행복해하는 삶임에 틀림없었다.

그 가정은 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집도, 권력가의 집도, 아닌데 그 집엔 항상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으니 천국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그런 생활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가족을 대할 때마다 만날 때마다 언제나 행복해 하는 표정들이었다.

처음은 예사로 생각했지만 몇 개월 지난 어느 날은 좀 달리 생각되는 거였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 집 가족들의 정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몇 달 동안 살피고 관심을 가져서인지 어느 날 결론이 나왔다.

어떤 불상사가 일어났을 때 남을 탓하지 않고 잘못된 일은 가족들 모두가 자기 때문에 그 런 일이 일어났다고 자기 탓으로 돌리는 거였다. 또 좋은 일은 상대방 덕으로 돌리는 거 였다.

어느 날 도둑이 들어 장롱 속에 두었던 며느리 결혼반지가 없어졌다. 그래도 집안 분위기는 생각 밖으로 차분하고 밝기만 했다. 그 때 보여 준 식구들의 반응은 가히 하나하나가 장원이 되고도 남을 만했다.

며느리의 결혼반지가 없어진 것을 보고 허탈해하면서도 가족들은 각기 이런 말들을 했다.

<제가 온수 샤워를 한 후 서려 있는 수증기를 빼고 환기를 시키느라 창문을 열어 놓았는 데 그 열린 창으로 도둑이 들어왔습니다. 제 탓입니다. 제 잘못으로 밤손님을 부른 것이 니 제가 아내에게 더 좋은 반지 하나 사주겠습니다.>

듣고 있던 아내가 <아니요, 제가 목욕탕 청소하느라 열어 놓고 창문을 안 닫아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니 제 잘못입니다.>

듣고 있던 할머니가 <아니다. 내가 목욕탕 들어갔다가 신경 쓰이게 하는 파리 한 마리 내쫓는다고 창문을 열어 놓았다 생긴 일이니 내 잘못이다. 그건 바로 내 탓이다.>

상황을 보고 있던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한 말씀 하시기를 <아니요! 아범도, 며느리 도,임자도, 잘 못이 없어요. 매일 문단속을 하는 내가 그날따라 피곤해서 일찍 자느라 열린 창문을 닫지 못해서 도둑이 들어온 것이니 내 탓이요. 아이고, 이 늙은이가 이렇게 큰 실수를 해서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도둑을 맞고서도 가족들이 모든 것은 자기 탓이라 하니 가정이 평화로울 수밖에 없었다,

태연자약하게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상대방을 탓하지 않으니 가족이 화목할 수밖에 없었 다. 이런 가족들이니 이집에는 평화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었다.

게다가 좋은 일이 생기면 <우리 임자 덕분에, 게다가 우리 며느리 덕분에 내가 요새 살 맛이 나요> 하는 식으로 가족들이 모두 <덕분에>를 입에 달고 는 가족이었다. 감사하며 사는 가족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 가정에는 사랑과 평화가, 웃음이, 끊일 날이 없으니 이들은 바로 천국을 만들어가며 사는 가족이었다.

다른 집 같으면 <네 탓>이나 <너 때문에> 로 미워하고 원망하며 싸우기에 바빴을 터 인데 이 집은 그게 아니었다. <내 탓이요> 로 돌리고 상대방을 관용과 배려로 푸근하 게 하고 있었다. 그러니 가정은 늘 천국으로 기쁨과 환희가 넘치고 있었다.

또 다른 대전의 어떤 집은 재력도 있고 가장이 사회적 지위나 직장도 괜찮은 사람인데 그 가정은 불화가 끊일 날이 없었다. 울음소리에 고함 소리, 거기에 던지고 깨지고 하는 소 리로 주변 사람들을 어렵게 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 그런 생활이니 가족들은 얼굴 을 펴고 사는 날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그 집 분위기는 늘 우울하고 가족들은 삶 자체가 괴롭고 고통의 연속이어서 지옥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집과는 유다른 가정이어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 보았다. 지나다가 남이 의식하지 못하게 집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소리가 크게 날 때는 가족들이 하는 말소리에 귀를 기 울여보기도 했다. 또 인근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종합해서 판단해 보니 가 정불화의 원인은 간단하였다. 가족 사이에 주고받는 말 가운데 <탓>이나 <때문에>에 란 단어가 문제였다. 가족 누구 할 것 없이 무슨 일이 있을 때는,

< 남편 때문에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어. >, < 엄마 극성 탓에 성적은 날로 떨어지고 있어. >, < 내 사업이 날로 기우는 것은 날마다 긁는 당신 바가지 때문이야.>, < 아빠가 문 열어 놓고 주무셨기 때문에 나 감기 걸렸어. >, < 너 때문에 이 아비 또 망신당했어.>.

매사 안 되는 일은 <당신 탓>, <네 탓>,<너 때문에>, 이런 식으로 미워하고, 원망 하고, 책임전가를 하는 가족들이니 가정이 편할 날이 없었다.

관용과 배려가 없는 말만 골라 하는 식으로 사는 가족들이니 가족 사이에는 갈등과 불협 화음뿐이었다.

<탓이요 >의 두 열 매

하나는 행복의 열매 천국이요,

또 다른 하나는 불행의 열매 지옥인 것이다.

그건 바로 <탓> 앞에 <내> 와 <네> 어느 것을 붙이느냐에 따라 열리는 열매인 것이다.

<네 탓이오>는 미움과 원망을 불러오고,

<내 탓이오> 엔 관용과 배려가 숨 쉬고 있다.

<덕분에>는 <내 탓> 으로 통하고,

<때문에>는 <네 탓으로 > 통하는 말이 된다.

천국을 소망하는 현자(賢者)라면 과연 어떤 말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는가!

그대는 과연 현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천국을 버리는 우매한 자가 될 것인가!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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