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현 교사 |
어느덧 18년 넘게 교직에 몸담으며 담임교사로 인연을 맺은 학생들을 떠올려보니 군 복무 휴직 2년과 교과전담교사 3년을 제외하고 13년 동안 200여 명의 학생들의 담임을 맡았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는 과연 200여명의 학생들에게 어떤 선생님이었을지 생각해보면 아득한 기억들로 남아있지만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보람 있고 행복했던 시간도 있지만 아쉬움이 남는 점도 있었다. 아마 가장 아쉬운 점은 학생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6학년 3반 37명의 담임을 맡았을 때는 국가에서 정한 성취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한 명 이라도 줄이기 위해 충청남도의 초등학교 전체가 들썩이던 시절이었다.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해 저녁 식사도 학교에서 함께 하며 밤 8, 9시까지 남아서 지도했던 그 시간들... 지금 돌이켜 보아도 매일 밤 늦게까지 학생들을 지도하고 집까지 내 차에 태워 보냈던 그 당시의 열정과 체력이 놀랍다.
나도 힘들었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제자들은 그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힘든 중에도 선생님들과 함께 신나게 학교 앞 식당까지 걸어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저녁 간식 시간이 되면 교무실로 한달음에 달려오던 해맑던 얼굴들이 가끔 아련하게 떠오른다.
다행히 충남미래교육 2030에서도 개별 성장 맞춤형 교육과정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어 더 이상 어른들이 정한 기준에 학생들의 학업성취수준을 맞추는 데 목표를 두지 않게 되었다.
학생의 삶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개별 특성에 맞추어 학습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교육과정 운영에 힘을 기울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나도 대규모 학교의 다인수 학급에서 10년 근무한 뒤 소규모 학교의 10명이 안되는 소인수 학급 담임을 7년째 맡으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
'느린 학습자(Slow Learner)'를 인정하고 학생들의 학습속도가 다름을 인정하고, 교사가 천천히 체계적으로 개별화하여 가르치면 학생들은'느리지만 잘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지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개인적으로도 마흔 넘은 중년이 되어 고등학교 시절 친구나 대학 동기들을 만나 술 한잔 기울일 때면 어느 순간부터 다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다', '공부 잘한다고 잘사는게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나눌 때가 있다.
교과서에 있는 지식이 전부가 아님을, 주어진 문제 하나 더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이제야 깨닫게 된 셈이다.
지금도 이러한데 미래 사회를 살아갈 지금의 학생들, 나의 제자들은 더욱 학습 주도성(Agency)을 갖고 자신의 특성과 삶의 목표에 따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배움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이러한 생각과 교육관을 가진 채로 내가 예전 제자들을 담임교사로 다시 만난다면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느려도 괜찮아. 선생님은 너를 믿고 기다릴게."
지금 담임을 맡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또 앞으로 담임을 맡을 학생들에게도 이 말을 항상 하며 기다려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자 한다.
시간이 더 흘러 정년을 앞두고 나의 교직생활을 돌이켜 보았을 때, 아쉬움 없이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손정현 석송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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