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느려도 괜찮아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느려도 괜찮아

손정현 석송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23-04-20 15:18
  • 신문게재 2023-04-21 18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석송초 손정현 선생님
손정현 교사
교단만필을 쓰기 전 나의 교직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어느덧 18년 넘게 교직에 몸담으며 담임교사로 인연을 맺은 학생들을 떠올려보니 군 복무 휴직 2년과 교과전담교사 3년을 제외하고 13년 동안 200여 명의 학생들의 담임을 맡았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는 과연 200여명의 학생들에게 어떤 선생님이었을지 생각해보면 아득한 기억들로 남아있지만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보람 있고 행복했던 시간도 있지만 아쉬움이 남는 점도 있었다. 아마 가장 아쉬운 점은 학생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6학년 3반 37명의 담임을 맡았을 때는 국가에서 정한 성취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한 명 이라도 줄이기 위해 충청남도의 초등학교 전체가 들썩이던 시절이었다.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해 저녁 식사도 학교에서 함께 하며 밤 8, 9시까지 남아서 지도했던 그 시간들... 지금 돌이켜 보아도 매일 밤 늦게까지 학생들을 지도하고 집까지 내 차에 태워 보냈던 그 당시의 열정과 체력이 놀랍다.

나도 힘들었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제자들은 그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힘든 중에도 선생님들과 함께 신나게 학교 앞 식당까지 걸어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저녁 간식 시간이 되면 교무실로 한달음에 달려오던 해맑던 얼굴들이 가끔 아련하게 떠오른다.

다행히 충남미래교육 2030에서도 개별 성장 맞춤형 교육과정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어 더 이상 어른들이 정한 기준에 학생들의 학업성취수준을 맞추는 데 목표를 두지 않게 되었다.

학생의 삶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개별 특성에 맞추어 학습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교육과정 운영에 힘을 기울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나도 대규모 학교의 다인수 학급에서 10년 근무한 뒤 소규모 학교의 10명이 안되는 소인수 학급 담임을 7년째 맡으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

'느린 학습자(Slow Learner)'를 인정하고 학생들의 학습속도가 다름을 인정하고, 교사가 천천히 체계적으로 개별화하여 가르치면 학생들은'느리지만 잘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지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개인적으로도 마흔 넘은 중년이 되어 고등학교 시절 친구나 대학 동기들을 만나 술 한잔 기울일 때면 어느 순간부터 다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다', '공부 잘한다고 잘사는게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나눌 때가 있다.

교과서에 있는 지식이 전부가 아님을, 주어진 문제 하나 더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이제야 깨닫게 된 셈이다.

지금도 이러한데 미래 사회를 살아갈 지금의 학생들, 나의 제자들은 더욱 학습 주도성(Agency)을 갖고 자신의 특성과 삶의 목표에 따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배움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이러한 생각과 교육관을 가진 채로 내가 예전 제자들을 담임교사로 다시 만난다면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느려도 괜찮아. 선생님은 너를 믿고 기다릴게."

지금 담임을 맡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또 앞으로 담임을 맡을 학생들에게도 이 말을 항상 하며 기다려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자 한다.

시간이 더 흘러 정년을 앞두고 나의 교직생활을 돌이켜 보았을 때, 아쉬움 없이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손정현 석송초등학교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