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음 가는대로 산다. 일일이 경제성 따위를 따지지 않는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란 말이 있다. 시쳇말이 수년전 방송프로그램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비교 하지 말자는 의미일 것이다. 행복의 지름길 중 하나이다. 비교우위(比較優位)에 있으면 자신감으로 대체되지만, 열세가 되면 좌절 또는 포기에 이른다.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것이 문제다. 상호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그저 관람자가 되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무대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무대에 충실하면 될 일이다.
비교는 질투의 산실이 되기도 한다. 편차가 크면 언감생심(焉敢生心), 아예 비교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비교한다는 것은 미미한 차이가 존재할 때이다. 질투 대상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다. '부러워하지 않으면 그게 지는 거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저)란 주장도 있다. 질투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선망의 대상으로 삼아야한다고 조언한다. 선망의 자세를 지녀야 타인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이긴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발전 동력이 되도록 동기유발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부족한 줄 모르면 발전이 없다. 자신의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지 승패의 대상으로 삼지는 말자는 의미다.
아는 만큼 세상이 달라 보인다. 이른바 안목이다. 진위도 알아야 하고, 가치도 알아야 한다. 선악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안목이 있어야 바른 방향도 선택할 수 있다. 기쁨도 아는 만큼 찾아온다. 그에 따라 행복의 유무나 크기도 달라진다.
흔히 말하는 조선의 르네상스, 영정조시대에는 이른바 고급문화라고 하는 것에 누구나 심취했다. 일부가 누리던 문화복지가 보편화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은밀한 문화는 많았나보다. 심신의 쾌락, 쾌감에 집중하는 문화는 많다. 저마다 쾌감의 출처나 감도도 다르다. 대상, 장소, 시기, 처음이냐 빈번하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같이 사사건건 공유되지 않다보니, 풍문으로만 떠돌던 이야기도 많았을 것이다. 때로는 질투도 있고 고발도 있다.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신윤복(申潤福, 1758년 ~ 1814?)의 풍속화이다. 신윤복의 자세가 비판적이었는지, 긍정적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당시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질 뿐이다.
아래쪽에 석축이 보여 별장이나 누각 등 뭔가 조성된 장소에서 벌어진 꽃놀이라 생각된다. 주모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잘 꾸며놓은 주막집 뜨락일 수도 있겠다. 그림 제목대로 하면 야외라 해야 옳겠지만 제목은 근래에 붙여진 것이고, 예전엔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인 사례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가운데 앉아 거문고 연주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이 주빈인 것 같다. 보기에 왼편에 앉은 남자가 주인이리라. 이정명 소설 <바람의 화원> 때문에 사람 이름이 거론되기도 하나 과문한 탓에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내용으로 보 아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다. 접대하는 자리 일수도 있겠다. 등 뒤에 죽부인이 놓여있다. 편안히 음미하자는 것일 게다. 두 사람 사이에 기녀가 자리하고, 아래쪽에 악사 셋이 앉아 있다. 삼현육각이 아닌 대금, 해금, 거문고만 준비했다. 음율 즐기기에 충분하다. 이런 봄맞이를 해보았는가, 자문해 본다. 지금도 이렇게 준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가운데에 화로가 놓여있다. 담배 피기위한 불씨보관용이다. 사람 숫자에 변화를 주어 배치, 생동감이 있다. 저마다 다른 표정이 살아있어 살피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의상도 정확히 묘사되어 당시의 생활사, 복식사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행복, 행복하기 위한 방법, 안목, 준비 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만화방창 나들이에 그냥 나서지 말고 무엇인가 준비해보면 어떨까? 그럴 여유 없다고? 여유는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만드는 것이다. 바른길로 가면, 행복도 다르지 않다. 기왕에 꺼냈으니 김난도 교수의 말 하나 더 옮겨보자.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나아가 나침반 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거울이다. '지금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를 수시로 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울보다 나침반을, 나침반보다 시계를 더 찾는다." 방향성과 자기성찰을 강조하고 있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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