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 이상문 차장 |
어린 시절 자주 듣던 말이다. 망아지는 말의 고장인 제주도에서 길러야 잘 클 수 있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 공부와 일을 해야 잘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주변의 수많은 친구들이 대학과 직장을 위해 서울로 떠났다. 그렇게 떠난 친구들이 절반은 넘는 것 같다.
수도권의 면적은 우리나라 총면적의 12%인데, 인구, 산업, 병원, 대학 등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모여 있다. 특히 1000대 기업 본사 중 754개가 수도권에 있다. 젊은 인재들이 양질의 일자리와 생활환경을 추구하며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합리적인 현상이다. 수도권 집중은 지역 간 형평성 문제뿐 아니라 국토 등 자원의 비효율성을 초래한다.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에서는 높은 주거비와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데 비해 비수도권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수십년 동안 지방 균형발전 정책을 펼쳐왔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지역균형발전 구호는 희망고문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기치로 내걸었다. 6대 국정목표로 선정할 만큼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얼마 전 발표한 국가산업단지 발표가 그렇다. 정부는 지난 3월 15일 개최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전국에 15개 국가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고 6대 첨단산업에 2026년까지 550조 원 규모의 민간투자를 유도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첨단산업벨트 조성 계획' 및 '국가첨단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지역에 투자를 한다니 환영할 일이지만 마냥 그럴 수는 없었다. 이날 가장 핵심은 경기도 용인시 710만㎡에 2042년까지 20년간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공장 5곳을 구축하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투자액의 절반이 넘게 수도권에 집중됐다.
반도체 관련 시설이 집적화되면 경쟁력은 강화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지역 불균형 논란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먼저 손을 들어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반면, 비수도권 지역에 위치한 첨단 산업단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투자계획과 규모는 없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대전 국가산업단지 구상에는 더 어려움이 예상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프라가 집중된 수도권에 투자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이를 균형발전 측면에서 조정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이유로 기업의 입장을 들어주면 수도권 블랙홀과 지역 산업생태계 황폐화를 막을 수 없다.
'사람은 나면 전국 방방곡곡으로'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