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삶을 견디는 방법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삶을 견디는 방법

이진영 변호사

  • 승인 2023-04-12 10:54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이진영변호사사진
이진영 변호사
365일, 24시간, 60초. 물리적인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동일하게 흐른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순간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생의 어느 한 지점은 빛나는 순간이 되어 계속하여 되돌아보는 지표가 된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매일매일을 살아내다 보면 그 다음 날이 그닥 기다려지지 않는다. ‘주어진 역할 속에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았다’는 정도의 의미를 건질 수 있을까. 어떤 소설가는 소설을 왜 읽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삶을 견디는 힘'을 갖게 해준다는 말을 했는데 수긍이 간다(물론 그것이 꼭 소설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세상을 인과관계로 인식한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세상이 진짜 인과관계로 이루어졌는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양자역학에서는 이 세상은 확률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런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던 오래된 방법 중 하나가 '이야기'다.

우리는 늘 이야기를 한다. 나에 대해서, 남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오래전 사람들은 세상을 설명하는 원인으로 '신'을 선택했고, 신화라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지금 사람들도 신을 말하기는 하지만, 현재 그 자리의 대부분은 '과학'이 차지했다.



'이야기'를 단순화하면, '처음-중간-끝'이라는 형태를 가진 발화 내지 언어의 구조물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기승전결도 같은 말이다.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가 뚜렷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권선징악이 있다. 착한 사람은 잘 되고 나쁜 사람을 벌을 받는 이야기이다. 이만큼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다. 인과관계 속에서 세상을 파악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다.

다시 우리의 삶으로 돌아가,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다면 어떨까. 어떤 원인과 결과를 찾아낼 수 있을까. 하루 24시간, 일주일, 일년. 우리의 삶은 반복적이고 별다른 목적이나 인과관계도 없이 흘러가는 듯하다. 뚜렷하지가 않고 지리멸렬하다.

그 안에서 나의 이야기를 찾고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내가 만든 세상 속에 나를 위치시키고 그 의미를 찾는 작업이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의미 부여의 과정이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는 의미의 부여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 바깥의 세상을 내 안에 다시 구성한다. 세상은 나와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것 같지만, 나 없이는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종특(종족특성)이다.

서울 살 때의 일이다. 그때는 버스를 갈아타고 한 시간 반 정도를 가거나, 지하철로는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의 직장을 다녔다.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멍하게 있을 때도 많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떠오를 때도 많다. 그날은 지하철을 탔고, 지하철 차창가에 조그만 황동색 열쇠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놓고 갔겠거니 생각을 하다가, 내가 소설가라면, 주인공이 인생의 한 기점에서 어떤 열쇠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장면을 써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별일처럼 여겨지는 순간의 발견이었다.

특별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 그다지 외향적인 인간형도 아니어서 나서서 새로운 경험을 하지도 않는 편이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해나가고 쌓아가면서 나 나름대로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좋아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연결하고, 세상 속에 나를 위치시키는 작업이다. 매우 주관적인 작업이지만 나에게는 삶을 견뎌내는 방법이다.

좋은 기회를 통해 귀중한 지면을 얻게 되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한 사람으로서, 혹은 변호사로서 얻은 여러 이야기들을 지면을 통해 가끔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지면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통해 공감하거나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이진영 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유성구청소년수련관 2024 전국 우수 청소년운영위원회 선정… 6년 연속 쾌거
  2. [풍경소리] “다쳐도 좋을 마음은 세상 어디에도 없어”
  3.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경북의 대표 문화공간 <청송야송미술관>
  4. 대전태평중, 대전경찰청과 등굣길 학교폭력예방 캠페인
  5. "뉴 라이프 웰리스 유성온천"… 유성온천지구 활성화 외국인 팸 투어
  1. [아침을 여는 명언 캘리] 2024년 9월16일 월요일
  2. '아~ 식민과 제국의 교차로, 대전역이여' 문학 속 대전정거장은?
  3. 6경기 무패행진 대전하나시티즌…무엇이 달라졌나
  4. [충남 단풍 생태여행지를 소개하다] 5. 성주산 자연휴양림
  5. 산림청, 추석 연휴 산림재난 비상근무… "안전 이상 무"

헤드라인 뉴스


대전오월드서 불꽃놀이 중 화재…부여서 벌초하러 가던 차량 추락사고

대전오월드서 불꽃놀이 중 화재…부여서 벌초하러 가던 차량 추락사고

추석 연휴 기간인 주말 사이 대전과 충남에서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16일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전날인 15일 오후 8시 43분께 중구 사정동 오월드에서 불꽃놀이 행사 중 화재가 일어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인력 36명, 장비 13대를 투입해 25분 만에 불을 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불꽃놀이 파편이 인근 소나무 가지에 떨어지면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부여에서는 산에 벌초를 하러 가던 일가족이 탄 차량이 절벽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났다. 충..

보이스피싱범에 속아 돈 잃을 뻔한 70대…경찰·은행이 피해 막아
보이스피싱범에 속아 돈 잃을 뻔한 70대…경찰·은행이 피해 막아

추석을 앞두고 보이스피싱범에 속아 3000만 원을 인출하려던 70대 어르신을 경찰과 은행원이 발견하고 사전에 피해를 막았다. 16일 대전대덕경찰서에 따르면, 70대 노인 A 씨는 지난 9월 12일 국민카드와 금융감독원 직원, 중앙지검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에게 협박 전화를 받았다. "본인(피해자) 명의로 카드가 발행돼 해외로 1억 7000만 원이 송금된 이력이 있어 불법자금으로 처벌된다며 3000만 원의 카드론 대출을 받으라"는 연락이었다. A 씨는 당일 카드론 대출 신청을 한 후 다음날인 13일 오전 11시께 카드론 대출금을..

추석 맞이 옛날신문 시리즈(2)  `TV편성표로 본 방송 3사의 시청률 전쟁
추석 맞이 옛날신문 시리즈(2) 'TV편성표로 본 방송 3사의 시청률 전쟁

30년 전 추석에는 어떤 TV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방영됐을까? 다채널 시대인 요즘도 명절을 전후해 영화 개봉작을 비롯해 '아이돌 체육대회'등 명절 특집 프로그램이 휴일을 맞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유혹하고 있다. 유튜브나 SNS 등 손안의 미디어가 확대되면서 과거에 비해 시청률 경쟁이 치열하진 않지만, 추석 연휴 안방극장은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흥밋거리다. 1995년 추석은 9월 9일이었다. 당시 중도일보는 9월 8일자 지면 11면과 12면 2개면에 추석연휴 TV프로그램 편성표를 실었다. 종합편성 채널이 없었던 당시에는 방송..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옛 추석은 어땠을까?’ 사진으로 보는 추석명절 모습 ‘옛 추석은 어땠을까?’ 사진으로 보는 추석명절 모습

  • 이제는 사라진 명절 모습 이제는 사라진 명절 모습

  • 추석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와 버스전용차로 시행 추석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와 버스전용차로 시행

  • ‘추석 연휴에도 진료합니다’…대전 5개 보건소 순차적 비상진료 ‘추석 연휴에도 진료합니다’…대전 5개 보건소 순차적 비상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