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희 교사 |
우리 반에서 가장 말이 많고, 갈등도 잦았던 남학생이 이렇게 말했을 때, 내심 반가웠다.
"선생님, 쟤가요……"
"선생님, 얘가 욕했어요."
학생들은 갈등을 힘들어하고 불안해한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교사에게 판결을 요구하고, 교사에게 해결을 바란다.
교사라면 누구나 하루에도 자주 겪는 일이다.
"선생님, 서클로 이야기해 보면 안 되나요?"
나에게 이 말은 "선생님, 함께 해결해 나가보면 안 될까요?"라는 말로 느껴진다.
이 말은 공동체가 함께 이야기해 보고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한 학기가 지나고 학생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말들을 나올 때면 나는 교사로서 심판자, 해결사의 역할을 내려놓을 수 있다.
학생들 스스로가 갈등을 해결할 힘이 생겼다는 의미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클'이란 공동체 구성원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경청하는 활동이다.
단조롭지만 평화로운 이 활동을 나는 매우 좋아한다.
학기 초 학급 공동체를 만들어 갈 때, 학급에 갈등이 있을 때, 진솔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을 때, 학급의 일을 결정할 때 등등 학급에서 꽤 많은 '서클'을 한다.
학생들이 서클 활동에 익숙해지면 소규모 서클, 남녀 서클, 갈등 해결 서클 등 다양한 형태의 서클을 시도해본다.
다양한 서클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서클을 좋아하는 이유, 학생들이 서클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우리는 왜 서클 활동을 좋아할까?
서클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서클 활동에서 질문을 받고 곰곰이 생각하면서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내 과거의 행동에 대해 되짚어 보기도 하고, 내 기분과 감정을 진지하게 느껴보기도 한다.
서클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시간인 동시에 나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서클이 끝나고 나면 질문에 따라서 포근함, 후회, 즐거움 등 많은 감정을 만나게 된다.
서클은 학급 구성원이 동등하게 만나는 최소한의 방법이다.
왜곡된 학급의 질서는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도 힘의 논리를 만들어 낸다.
이 힘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학급에서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
힘의 왜곡은 학급 내보이지 않는 갈등을 만들어 낸다.
동그랗게 앉아서 공평한 기회를 얻고 이야기하는 서클의 방법은 힘의 왜곡을 막아주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서클은 건강한 또래 압력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이다.
평화를 추구하는 80%의 건강한 아이들이 학급의 힘을 이끌어 갈 때, 학급 내 또래 압력이 생겨난다.
또래 압력은 학생들이 스스로가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힘이다.
이 또래 압력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서클이다. 서클을 통해 아이들은 내 행동이 갈등을 유발하고, 다른 사람이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로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고 오해를 풀기도 한다.
서클은 소속감과 존재감을 느끼게 해 준다.
학급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의미는 아이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학급에서 역할을 맡지 않아도 내가 여기 함께한다는 자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는 행위 자체가 소속감과 존재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이는 공동체의 시작이 되고, 공동체가 건강한 목적의식을 갖고 나아가 할 수 있는 힘의 토대를 마련해 준다.
서클에는 힘이 있다.
서클은 나를 만들고, 공동체를 만들어 준다.
학생들이 서클을 좋아하는 이유는 평화의 힘을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생활 교육은 어렵다.
교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활 교육은 참 어렵다.
그래도 처음 교사를 시작할 때와는 다르게 지금의 나는 서클의 힘을 빌려 생활 교육을 하고 있다.
내게 서클은 어려운 생활 교육에 힘을 보태주는 평화로운 방법이다.
앞으로도 서클의 힘을 믿고 실천해 보고자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