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음주운전 살인자와 술 권하는 공범들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음주운전 살인자와 술 권하는 공범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대전자치경찰위원

  • 승인 2023-04-11 11:12
  • 신문게재 2023-04-12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이상훈 교수 수정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대전자치경찰위원
대전의 중심 서구 둔산동에서 벌어진 참사로 9살 초등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장소는 차량 속도가 시속 30Km로 제한되는 어린이보호구역이었지만 안전펜스도 없었다. 현장에는 시민들이 쓴 편지와 꽃, 인형, 과자가 어린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음주운전 사고에는 매번 강력한 처벌의 목소리가 높아지곤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행정안전부는 교통사고를 포함한 지방정부의 안전수준에 관한 중요 지표로 매년 지역안전지수를 발표한다. 생활 안전, 범죄, 화재, 감염병, 자살 등도 함께 평가한다. 2022년의 경우, 교통사고 사망자는 전년 대비 4.7%(2858명에서 2725명) 줄었는데, 특히 차로 보행자를 사망케 하는 것은 8.9%(1,056명에서 962명)로 가장 많이 감소했다.

여기에는 교통단속 CCTV를 30.5% 증설해 2020년 1만2606대에서 2021년 1만6449대로 늘렸고, 교통사고가 잦은 곳을 개선하는 데 지방비 예산을 전년 대비 83.6%로 과감하게 증액한 것도 한몫했다. 예산 규모로는 기존 806억 원을 1480억 원으로 늘려, 한 해 사이에 674억 원을 더 투자한 것이다.

그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2017년 2.9명에서 2021년 0.4명) 교통사고 분야에서는 커다란 개선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이번 발표에서 대전 동구가 기초자치단체로서는 무려 5개의 등급 개선을 이루어서 무척 고무적이다. 구민들의 안전의식을 높이기 위한 기초자치단체의 노력과 구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서 비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스쿨존 사고 참변에서 보듯 음주운전으로 인한 돌발사고에는 이 모든 노력도 속수무책이다. 주말 낮에 벌어진 과도한 음주와 버젓이 이어진 음주운전 교통사고에 대전시민들의 심경은 착잡하기만 하다. 혼자서 소주 1병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것이 아니라면 여기에는 과도한 음주와 음주운전을 묵인하고 방조한 이웃이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개인적 일탈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사고 후 경찰 조사도 힘들 정도로 심하게 취하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대목이다. 사회 분위기가 이러하다면 유사한 음주운전 참사는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후 약방문 같은 행위자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음주문화에 대한 범시민운동이 절실한 이유다.

앞서 언급한 분야별 안전지수 6개 분야에서 전년 대비 1등급도 상승하지 못한 광역자치단체는 광주광역시와 대전광역시뿐이다. 세부 점수를 보자면 대전은 광주보다 더 위험하고 안전하지 못한 공간이다. 안전지수 등급의 합으로 보면 대전은 17개 시도에서 부산광역시와 함께 꼴찌다. 대전시장의 분발을 촉구한다.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도로면적당 교통단속 CCTV 대수를 늘리고, 교통안전 환경개선 사업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 외에, 음주운전 경험률을 낮추는 음주문화 개선 운동을 대전시와 시민단체가 합심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시적이나마 대리비용을 예산으로 보조해서라도 음주 후 운전대를 잡는 습벽만은 반드시 끊어야 한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음주에 동석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공범성 여부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음주한 일행이 가해자가 자동차를 몰고 출발하는 것을 보고도 방관했다면 음주운전 동승자와 같은 수준의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술을 판 판매자도 수사 대상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음주운전에는 강한 처벌만이 답이라는 인식이 크다. 하지만 사고를 내지 않을 것이라거나 적발되지 않을 것이라고 속단하는 음주 운전자들에게는 효과가 떨어진다. 음주운전은 '경찰이 잡는 범죄'만은 아니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시민도 막아서는 범죄'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술에 취해 한 행동에 대해 관용하는 것은 자신이나 가족이 그 행동의 종국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 대전시민으로서 우리와 함께했던 어린 영혼의 명복을 빈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대전자치경찰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