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미국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펼친 황기환 애국지사가 10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사진=이성희 기자) |
황기환 지사는 1886년 4월 4일 평남 순천에서 태어나 19세가 되던 1904년 증기선을 타고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입항해 사탕수수농장에서 노동자로 종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1918년 5월 18일 미군에 자원입대해 참전해 중상자 구호를 담당했다. 1919년 6월 파리위원부에서 서기장을 맡아 '통신전(通信箋)'을 발행해 유럽 내 각 언론기관과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 및 저명인사 등에게 송부함으로써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헌신했다. 또 1920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런던위원부 위원에 임명되어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외교활동을 펼쳤고, 10월에는 영국의 언론인 맥켄지와 긴밀히 협의하여 '대영제국 한국친우회' 결성을 주도하고 한국 독립을 호소하는 연설을 통해 영국인들의 지지와 성원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후 뉴욕과 런던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1923년 4월 후손없이 뉴욕에서 서거했다.
순국 후 80여년 만인 지난 2008년 뉴욕의 공동묘지에서 그의 묘소가 발견돼 유해 봉환을 추진했지만, 사망 당시 미혼으로 파묘를 신청할 유족이 없어 시간이 오래 걸렸다. 국가보훈처는 후손이 없어 무적(無籍)으로 남아있던 황 지사의 가족관계 등록을 창설하기도 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국가보훈처는 앞으로도 무호적 독립유공자분들에 대한 가족관계 등록 창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국가와 국민적 예우를 받으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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