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톡] 류지탁 시인의 시집 '봄의 명상'을 읽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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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톡] 류지탁 시인의 시집 '봄의 명상'을 읽어보니

김용복/평론가

  • 승인 2023-04-09 14:56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송곡(松谷) 류지탁 시인께서 다섯 번째 시집인 '봄의 명상'을 상재(上梓) 하신단다.

필자는 송곡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시상을 전개하는 솜씨와 시어를 조탁하는 재능이며, 가슴속 깊이 내재 된 성격까지도 잘 알고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성격 유형이 있다.

성공하는 삶이란 자신의 성격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때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보령시장 김동일은 개펄에서 진주를 캐내기 시작했다. 개펄에 숨겨진 보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땅콩은 모래밭에 심어야 잘 자라고, 연꽃은 진흙에서 더 잘 자라는 것이다.



류지탁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공감이 가기 때문이고, 시어를 조탁(雕琢)함에 있어 재주를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보자. 놀뫼의 시집 '봄의명상' 15쪽에 나오는 '사모곡'과 25쪽에 나오는 '울음바다'라는 시를.



사모곡



울 엄니가 보고 싶어

낮잠을 청했어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어서

하루 종일 잠만 잤어



그런데도

울 엄니는 안 오셨어



뒤척이며

개꿈만 꾸었어



송곡은 유복자로 태어났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힘들게 살아오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얼마나 아픈 그리움이 다가 왔겠는가? 그래서 어머니를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어 낮잠을 청했다고 했다. 하루 종일 잠만 잤는데도 울 엄니는 안 오셨다고 뒤척이며 개꿈만 꾸었다고 했다.

필자는 열 살때 서른 살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동생들 잘 보살피고 새 엄마 말 잘 들으라고 하시면서. 눈이나 제대로 감기셨을 것인가? 송곡은 엄니를 보고싶은 마음에 억지로 낮잠을 청하며 개꿈을 꾸고, 나는 열 살 먹은 어린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으신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여기서 끝내자. 눈물 때문에 계속 써 내려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울음바다



시간이 되었다고 뻐꾹새 울어대고

무슨 사연 있는지 손 전화도 울었다

초인종 울고 있어 나가보니 이모님 오셨네



우리 집 울보 삼형제 울음마저 우애롭다



울 어머니 생각나서 나도 눈물 흘리니

손주들 옆에서 놀다 왜 우냐며 따라 운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썼을 것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낮잠까지 청했다 한다.

송곡은 친구들, 특히 월정 시인과 어울려 막걸리는 먹되 낮잠을 자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 송곡이 낮잠까지 청하며 어머니를 그리워했으니, 그 그리움이 얼마나 간절 했겠는가?

송곡은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서정시를 썼다. 서정시를 쓰되 주정시(主情詩)를 썼던 것이다. 주정시란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를 그 내용으로 하는 개인적·주관적 성격의 시인 것이다. 그래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 때는 주로 주정시로 써야 제맛이 나는 것이다.

'울음바다'라는 시에서도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는데 '뻐꾹새 울어대고 무슨 사연 있는지 손전화도 울었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머니와 한 핏줄인 이모께서 오신 것이다. 얼마나 반가웠으랴! 이모를 보고 울어대는 할아버지를 보며 왜 우느냐고 재롱떠는 손주들이 옆에 있으니.

24쪽에 나오는 '머리앓이'라는 시도 보자.



머리앓이



아주 절실한 마음에 깊이 새길 만한

한 토막글을 쓰려고 하얗게 밤을 새운다



최악의 시간

오뉴월 독감처럼 몸살을 앓고



코피 터지고 머리에 쥐가 나서

쓰레기처럼 유기(遺棄)될 때가 있다



출산의 고통 겪고 나면

공자 석가모니 예수 노자의 말씀 같은

시 한 수 옥동자로 태어날 수 있을까

까만 밤 하얗게 지새며 머리앓이 한다

선비 따라 하기도 힘들구나.



밤새워 시를 쓰기 위해 몸살을 앓으면서까지 시어를 조탁한 흔적도 없고, 행 배열을 맞추기 위해 도치법도 쓰지 않았다. 한편의 시를 창작하기 위해서는 최악의 시간을 겪되 오뉴월의 몸살처럼 겪는다 했다.

보라, 오뉴월의 몸살을 겪고 난 한 편의 시가 얼마나 공감이 가는가를.

27쪽의 비구니가 된 꽃도 보자.



비구니가 된 꽃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

너무 예뻐서 꺾지 않고

바라만 본 게 내 잘못이래



밀면 다가서고

끌면 물러나는

내가 숙맥이라면서

어떤 군인이

그 꽃을 꺾어 갔다고

또 바보란다



한 많은

사연이 있는 그 여인

삭발하고 비구니 되었는데도.



한 많은 사연이 있는 그 여인이 삭발하고 비구니 되었다해서 비구니가 된 꽃이라 했다. 비구니란 어떤 스님인가?

비구니는 의역하여 걸사녀(乞士女)라고 한다. 출가한 여자가 사미니(沙彌尼) 생활을 거쳐 2년 동안의 시험 기간인 식차마나(式叉摩那)로 있다가 평생을 출가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인정되면 348계를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 구족계를 받으면 정식으로 비구니가 되는 것이다.

중국의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는 궁녀로서 두 명의 황제(태종(太宗), 고종(高宗))를 섬겼고, 일개 궁녀에서 황후의 자리까지 올랐으며, 두 명의 황제(중종(中宗), 예종(睿宗))를 낳았고, 스스로는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가 되었다. 원래 태종의 후궁이었던 그녀는 태종이 병이 든 후 황태자 이치(李治, 후의 고종)와 서로 연모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태종이 죽자 감업사(感業寺)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

송곡 류지탁은 이런 사연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측천무후의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연을 '삭발하고 비구니 되었다'고 읊었던 것이다.

이어지는 '비련의 여인'도 보자.



비련의 여인



나는 그믐달을 좋아한다

요염하고 깜찍하게

예쁜 여인 같으나

마음이 여려 가슴 저리고 쓰린

가련한 달



갖은 풍상 다 겪고

그 무슨 원한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은 애절한 달



낭군을 잃고 쫓겨나

보는 이도 찾는 이도 없는

비련의 외로운 달



객창 차가운 등불에 먼저 간 임 그리워

잠 못 들고 쓰린 가슴 움켜잡은

한 많은 홀아비가 넋 잃고 보는 달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든 세상



저주하며 홀로 우는

청상의 여인

빈 하늘에서 번득이는 비수와 같은

푸른빛의 달



한이 많은 사람이라서인지

그 달을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나만 보는 게 아니라

밤늦게 집에 가는 술주정뱅이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노름꾼도 보는 달



어떻든 그믐달은 정 많은 사람이나

한 맺힌 사람이 보는 달이다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이 시에서는 연의 끝마다 '달'이라는 명사를 사용해 각운을 맞췄다는데 의미가 크다. 이른바 압운법인 것이다. 압운법은 두운, 요운, 각운으로 나누어지는데 두운은 모든 시행들의 처음을 같은 음으로 일치시키는 방법이고, 요운은 모든 시행들의 가운데 음을 같은 음으로 일치시키는 방법이며 각운은 모든 시행들의 마지막 음을 같은 음으로 일치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인들은 대체로 압운법을 사용하지 않는데 비해 송곡 류지탁 시인은 압운법의 하나인 각운을 써서 '달'의 이미지를 확실히 했던 것이다.

보라, 그가 사용한 각운의 묘미를.

그믐달을 좋아하되 요염하고 깜찍하게 예쁜 여인 같으나 마음이 여려 가슴 저리고 쓰린 가련한 달을 좋아하고, 갖은 풍상 다 겪고 그 무슨 원한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은 애절한 달을 좋아했으며, 낭군을 잃고 쫓겨나 보는 이도 찾는 이도 없는 비련의 외로운 달을 좋아한다 했다.

어디서 이런 시상이 떠올랐을까? 그는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곁에는 늘 월정이라는 시인이 있고 가까이에는 꼬막을 안주 삼아 마시는 막걸리가 있는 것이다. 행복한 푸념일 것이다. 아니면 짝을 잃고 외롭게 살아가는 필자와 월정을 바라보며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유복자의 한'도 감상해보자.



유복자의 한(그리움)



전생에

무슨 피치 못할 업보이기에

마주할 수 없는

인연으로 태어나



아버지와 나는

단 한 번의 짧은 만남도

허락되지 않았나요

가혹한 형벌입니다



먹구름 몰려와

잔뜩 찌푸린 얼굴

억수로 쏟아 붓는 비



내 마음 깊은 곳에

아프게 상처를 내며

눈물 강이 흐릅니다



고희의 문턱에서도

보고 싶은 아버지

그리움 다독이는



한편의 시가 되어

나를 위로합니다.



송곡은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 대여섯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 없이 홀로 살아가는 엄마의 힘든 삶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먹구름 몰려와 잔뜩 찌푸린 얼굴'은 어머니의 힘든 삶의 모습이었을 것이고, '억수로 쏟아 붓는 비'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 아들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主情詩는 은유와 상징이라는 수법을 쓰지 않고, 시인의 감정을 걸러내지도 않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하여 같은 정서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송곡의 시는 그래서 읽기에 편하고 공감이 가는 것이다.

결론을 맺자.

이번에 출간되는 '봄의 명상'이라는 시집에는 80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모든 작품을 여기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필자는 물론, 시인이 되기 위해 작정하신 분들은 송곡이 쓴 시를 읽어보기 바란다. 시어의 조탁이나 문장에서 각종 기교를 부리지 않아 쉽게 시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자랑스럽다. 송곡과 친구로 살아간다는 것이.

김용복/평론가

김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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