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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전문무역상담센터 전문위원·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은 이러한 국가의 시스템을 믿고 오늘도 법원에 재판을 청구하고 있을 것이다. 재판에 진 사람은 승복하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법리'라는 것이 작동한다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는 우리 법원의 재판은 법률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가끔 전관예우니, 재판거래니 하는 사법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단어들이 뉴스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재판은 잘 훈련된 법관들에 의하여 법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결론이 도출되고 있다.
그런데 변호사로서 일선에서 일하다 보니 최근 몇 년간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지만,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하나의 사건을 시작하면 판결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몇 년 새 체감상으로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법원에 따라 물론 다르겠지만, 우리 지역을 기준으로 하면 웬만큼 평이한 민사소송은 1년 안 걸려 판결을 받았고 이혼소송의 경우도 6~10개월이면 충분했는데 이제 쟁점이 많지도 않은 소송도 1년 반은 기본이고 2년에 육박한다. 형사 항소심의 첫 재판이 열리기까지 기본 6개월 이상 걸릴 만큼 지연이 되고 있어서 깜짝 놀랄 뿐이다.
민사소송도 그렇지만 이혼소송을 맡아서 할 때 소송이 길어지면 당사자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이혼소송의 피고들은 소송을 빨리 끝낼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원고를 대리할 때에는 한없이 늘어지는 재판 때문에 지친 원고를 달래고 안심시키는 것이 주요 업무 중 하나일 지경이다. 그런데 재판부가 빨리 진행하지 않을 때는 기일지정신청 같은 제한된 수단 외에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으니, 재판 지연으로 울고 있는 의뢰인을 생각하면 갑갑할 뿐이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헌법에까지 규정되어 있는 기본권인 것은 이유가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는데, 권리구제가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의미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나라 법원이 세계 유수의 나라들과 비교해 재판이 신속하다는 평을 받고 있었는데, 이제 신속한 재판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 이유로 법조계에서는 고법부장 승진제도가 없어진 것이나 법원장을 일선 법관들의 추천을 받아 임명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을 많이 꼽는다. 열과 성의를 다해 열심히 판결할 판사들의 동기가 사라진 것이다. 1주일에 판결문을 3개만 쓰고 그 이상을 쓰라고 하면 상급자를 국가인권위에 진정할 만한 일이 되었다니 이 무슨 낯부끄러운 일인지.
'그렇게 일이 하기 싫으면 집에서 노세요. 괜히 손님으로 와서 귀하신 분을 귀찮게 해서 미안하네요. 이제 오지 않겠어요'라고 말해줘야 할 사람들이 사회에 점점 늘어가는데, 법원도 그런 세태에 예외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니 씁쓸할 뿐이다.
송무를 하는 변호사로서, 법원은 나의 가장 중요하고 대체 불가한 협력업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 협력업체가 망해가는 것 아닌가, 하루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이다. '망하기 전에 빨리 이 바닥을 떠야지'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가 다음 순간, 그래도 묵묵히 양심과 소신을 지켜 판결하고 있을 남아 있는 판사님들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세상이 어려워져도 법률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면서 주어진 자리를 지켜야 할 터.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전문무역상담센터 전문위원·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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