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백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차세대화학기술전략센터장 |
우선 2018년 대비 40% 줄어든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눈에 띈다. 목표 달성을 위한 보다 체계적이고 강화된 이행계획도 제시됐다. 기존 인프라, 산업공정 등 배출시설 중심의 소극적 개선 계획에서, 점진적으로 저탄소·순환경제 체계로의 전환을 꾀하려는 대목들이 두드러진다. 돌이켜보면 기술 발전의 '전환기'에는 늘 거대한 혁신이 있었다. 목질계 연료에서 석탄으로, 석탄에서 석유로, 석유에서 전기로 전환되는 시점마다 증기기관, 내연기관, 발전기술과 같은 기술혁신이 뒤따랐다. 저탄소·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이루려는 현 상황에서도 재생 에너지, 무공해차, 순환이용, 수소,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기술) 등의 기술혁신이 가속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전환은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이미 대규모 투자와 시설을 갖춘 기존 기술보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 및 조기 상용화 지원이 전환 속도와 파급성 면에서 효과가 클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이나 유럽의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탄소중립을 위한 국가 R&D사업이 속도와 효과 면에서 적절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우선 속도 면에서는 탄소중립의 정책·산업적 중요성을 고려해 R&D 예산을 편성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거의 모든 부처에서 탄소중립 예산을 편성·증액하고 있으며, 각 부처의 목적과 역할에 맞는 기술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효과 측면에서는 기술개발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탄소중립의 범위가 워낙 광범위해 이 작업이 쉽지 않다. 기술개발 단계에서 효과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일례로 바이오 기반 생분해 플라스틱의 경우 일정 조건에서만 분해되기 때문에 현재의 매립방식으로는 온전한 처리가 될 수 없다. 재활용 공정 과정에서 다른 플라스틱과 섞여 재생 플라스틱의 품질이 저하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또한 현재 기술개발 사업에서 요구되는 탄소배출량 산정방법으로는 원료-생산-사용-폐기(재활용) 각 단계에서 온실가스 증감을 제시할 수는 있으나 전체 시스템상에서 상호 간의 영향은 측정할 수 없다. 따라서 공정개선과 같은 특정 단계에서는 직접적인 탄소배출량 절감이 목표가 될 수 있지만, 대규모 전환 기술의 경우 기존 방법으로는 기술개발의 온전한 성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선진국들이 전 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탄소발자국과 같이 제품 시스템 전반에 걸쳐 잠재적 환경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분석 기법을 활용해 제품 시스템 간, 기존 기술과 신기술 간 영향을 비교하고, 최적화 요인을 도출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정부도 R&D 사업에 적합한 전 과정 평가 방법론을 개발 중이다. 전 과정 평가는 기술정책 측면에서 폭넓은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환경영향을 사전에 파악하고, 전체 기술(제품) 시스템이 미치는 총체적인 영향을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기술개발 단계의 의사결정이 상용화 시점에서 공정비용이나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전적인 환경영향의 검토 자체가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분석 데이터가 부실한 점, 기존 시스템에 따라 변동될 수 있는 점 등 아직 살펴봐야 할 부분이 많지만, 탄소중립을 위한 큰 걸음을 뗐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에는 '과학기술'이 핵심 Key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가 R&D 사업의 탄소저감 효과를 총체적으로 파악해 실용성 높은 기술에 집중 투자할 수 있는 성과평가 방법이 도입되기를 기대한다. 박백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차세대화학기술전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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