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민 최서단 무인섬 격렬비열도의 북격렬비도 너머 영해기점인 서격렬비도가 보인다.분쟁화를 차단하는 대비가 요구된다. |
충남 서해의 외로운 섬 격렬비열도. 그곳을 찾아가는 여정은 3월 29일 태안군 근흥면 신진항에서 시작했다. 대전지방기상청이 운영 중인 북격렬비도의 서해종합기상관측기지 장비를 점검차 한국환경공단에서 마련한 비정기 연락선에 양해를 구하고 동승했다. 물론 해양수산부 대산지방해양항만청에 사전에 입도 신청서를 제출했다. 낚시 동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8.55톤 민간 선박이 이날 공무상 출장하는 기상청과 환경공단 직원들을 북격렬비도까지 안내하는 비정기 연락선 역할을 수행했고, 장판처럼 파도가 잔잔할 때 출항 2시간 만에 북격렬비도에 도착했다.
격렬비열도 섬 중에 가장 크고 식생이 풍부한 동격렬비도. 사유지이면서 접안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근접할 수 없다. |
격렬비열도는 12개의 섬이 삼각형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데 북도(북격렬비도·9만 3601㎡), 동도(동격렬비도·27만7686㎡), 서도(서격렬비도·12만8903㎡)의 3개의 섬을 주로 친다. 서격렬비도는 대한민국 가장 서쪽에 있는 무인 섬이자 독도와 같이 우리나라 영해(領海)를 정하는 23개 기점 가운데 하나다. 독도가 일본의 억지 주장으로 분쟁화로 치닫는 것처럼 중국과 영해의 경계가 되는 섬이라는 점에서 격렬비열도에서도 그러한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 충남 태안반도 관장곶에서 서쪽으로 55㎞ 해상에 있으며, 중국 산둥반도와의 거리가 불과 268㎞밖에 안 된다. 충남 홍성의 충남도청에서 부산시청까지 직선거리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이 잦은 곳으로 섬과 그 주변의 어장 관할권을 노린 2014년 중국 측 사업가가 서격열비도에 대한 매입 시도가 있었다. 주요 3개 섬 가운데 북격렬비도만 정부(해양수산부)가 소유하고 있고, 서격렬비도와 동격렬비도는 개인 소유의 사유지라서 외국인에게도 매매될 수 있다는 빈틈을 노린 것이다. 영해기점 무인도서에 대한 토지거래를 제한하기 위해 2014년 말 서격열비도와 경북 포항의 호미곶 등을 외국인토지거래허가구역 및 절대보전 무인도서로 지정하고 2016년에는 환경부가 환경보호 차원에서 특정도서로 지정해 급한 불은 껐다.
태안에서 향토사를 오래 연구한 최재학 (사)우운문양목선생 초대 이사장은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멀리 있고, 태안말로 뱃석(접안)이 안 좋아 어려워했다"라며 "옛 사람들이 유채를 심어 기름을 채취하곤했는데 지금의 유채꽃밭이 그때로부터 유래됐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전기상청 심준수 주무관(사진 왼쪽)과 대산지방해양수산청 이제길 주무관이 북격렬비열도에서 운용 중인 바람관측 장비와 등대 등명기를 점검하고 있다. |
기자가 도착한 북격렬비도는 해양수산부의 등대와 기상청의 서해종합기상관측기지가 운영되고 있다. 2005년 관측을 시작한 국내 첫 번째 해양기상관측기지다. 편서풍 지역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서해상에서 이동하는 기상 변화로 인해 여름에는 악기상의 발생이 빈번하며, 겨울에는 북서쪽으로부터 대륙고기압이 접근하면서 서해안지역에는 많은 눈이 내린다. 서해상에서 발달해 육지로 접근하는 기상 현상의 변화를 북격렬비도의 관측기지를 통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악기상이 접근하는 입구인 셈이다. 방사선을 이용해 대기 중의 에어로졸 농도를 측정하는 부유 분진 측정기를 비롯해 서해상에서 잦은 지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지진계, 전파를 대기 중으로 발사해 반사되는 전파신호를 수신 및 분석해 측정하는 연직 바람 관측장비와 인공위성에서 지상으로 수신되는 신호를 통해 대기 상태를 분석하는 지구위성 항법장치 등이 상시 관리자 없이 가동 중이다. 환경부의 초미세먼지 측정기가 함께 운영되고 있어 내륙으로 다가오는 미세먼지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게 됐다. 전력이 외부에서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태양광발전과 디젤발전기, 풍력발전기 등을 갖췄다.
대전기상청 관측과 심준수 주무관은 "서해를 거쳐 육지에 유입되는 구름의 양과 강수, 강설 그리고 악기상을 정확히 예보하려면, 육지에 상륙하기 전에 서해 해상에서 관측해야 한다"라며 "예측 선행 시간을 이전보다 2~3시간 앞당겼고 충청권의 예보 정확도가 향상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최서단 지킴이 114년 등대
북격렬비도에 등대가 설치된 것은 1909년으로 1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로부터 험한 물살로 유명한 '관장목'을 항해하는 선박과 조업하는 어선의 안전을 위해서다. 북격렬비열도의 등대는 어로작업에서 각종 어선의 항로표지가 되는 곳으로, 1994년 무인화로 전환됐으나 2015년 7월 다시 등대원을 파견해 운영하고 있다. 등대원에 대한 정식 명칭은 항로표지관리원으로 중국어선의 불법어업 감시와 인근 해역을 오가는 배들에 불을 비추는 일이 임무다. 빛을 밝히는 등명기는 일몰시간에 자동으로 작동해 일출 시각에 소등되며, 불빛 도달거리는 45㎞에 달할 정도로 매우 밝다. 대형 등명기 외에도 음파표지를 통해 해무가 짙게 낀 날에는 25초 간격으로 5초간 특유의 경적을 내어 격렬비열도 해역 진입을 알린다. 2인 1개 조가 15일씩 섬에 상주하며 불시에 등대가 작동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준비가 중요해 긴장감 높아 보였다. 이곳 역시 외부에서 전력이 공급되지 않고 태양광과 발전기로 전기를 직접 생산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대산지방해양수산청 이제길 주무관(항로표지관리원)은 "등대 기능 유지에 필요한 장비와 그 이외의 음파, 전파표지들을 유지·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라며 "서해의 끝단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견학이나 연구 등을 위해 방문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영해기점 23곳을 표시한 지도. 서해 격렬비열도 서격렬비도는 최서단 무인섬으로 중국과 영해의 경계를 설정하고 있다. (그래픽=해양수산부 제공) |
격렬비열도 해역은 기상악화 시 어선 피항과 신속한 재난 구호에 필요한 요충지임에도 해양경찰이 출동하려면 3시간이 소요되는 취약한 상태다. 해상교통 안전과 불법어획 관리는 물론이고 해양영토 보전 등 자주권 수호를 위해 국가 주도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다. 격렬비열도 해역에는 한·중 공동 관리 수역이 있는데,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이 자주 발생하는 실정이다. 해양수산부가 격렬비열도의 북격렬비도를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지난해 지정하면서 2030년께 격렬비열도항이 개장될 예정이다. 국가관리 연안항은 현재까지 전국에 기존 11곳뿐으로 의미가 작지 않다. 항만기본계획에 반영시키고, 접안시설, 호안시설 등을 확충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중국 언론은 한국의 격렬비열도 국가관리 어항 지정 소식을 빠르게 전하며 '중국을 염탐하기 위한 것'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취재를 바탕으로 '격렬비열도'를 발간한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학과 교수는 "백령도는 격렬비열도보다 더 멀리 있으나 주민과 관공서에 의해 관리되나 이곳은 사정이 다르다"라며 "풍부한 어장이 있고 매입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가 지금부터 더욱 철저히 준비하고 대응해야 분쟁화를 막을 수 있다"라고 당부했다.
임병안·태안=김준환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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