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정보의 홍수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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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백향기 대전 창조미술협회 회장

  • 승인 2023-04-04 17:19
  • 신문게재 2023-04-05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남편이 청소를 한다고 욕실에 들어가더니 한참 있다가 무심한 표정으로 들어와 보라고 한다. 이렇게 아무 일도 아닌 듯 이야기할 때에는 무언가 자랑할 일이 있을 때이다. 들어가 보니 샤워 부스 칸막이 유리를 반짝반짝 광이 나도록 닦아 놓았다. 그동안 비눗물 자국, 오래된 물때가 부옇게 끼어 있어서 몇 번 닦아 보려고 했지만 잘 닦이지 않아 부연 유리를 그대로 둘 수 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새집처럼 맑고 투명하게 닦아 놓았으니 당연히 어떻게 닦았는지 궁금해졌다. 방법은 그리 특별할 것이 없었다. 식초와 주방용 세제로 닦았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검색해 보고 우선 그 중 간편하다고 생각되는 방법으로 해 보았는데 효과가 생각보다 좋았다고 한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세상의 궁금한 일들에 대한 여러 가지 대답들이 있어서 마치 보물상자와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야말로 정보가 넘쳐 나는 곳이다. 나도 요즘에는 새로운 지식을 얻거나 일상의 궁금한 일들이 있으면 종종 이용하게 된다. 이전에는 젊은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이려니 하고 잘 사용하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궁금한 것들이 있으면 종종 찾아보게 된다. 새로운 문물이니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용빈도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서 조차 이런저런 내용이 상당히 있고, 그중에는 그럴 듯한 것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사실 그림을 처음 배우는 방법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전공을 위해 그림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연습은 데생이다. 데생은 프랑스어의 그리다는 뜻을 가진 데시네(dessiner)에서 파생된 단어로 연필이나 파스텔, 콩테 등으로 주로 단색조로 그리는 그림을 말한다. 요즘에도 많이 하는데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전에는 미술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몇 가지의 석고상을 집중적으로 그리는 연습을 많이 했고, 이것이 그림의 기초 입문 과정처럼 여겨져서 그야말로 손에 익도록 석고상을 마치 암기하듯이 집중적으로 반복, 반복하면서 연습하는 방법으로 그림 공부를 했다. 요즘은 입시 실기 방법도 많이 바뀌었고, 동일한 석고상을 반복해서 그리는 방법은 그리 많이 사용하는 것 같지가 않다. 한자를 배우는 방법도 천자문을 순서대로 줄줄 외우도록 하여 공부한 것을 보면 석고상 그리기와 비슷한 면이 있다. 사실 요즘 생각대로라면 순서대로 외우지 않아도 천자문에 있는 한자를 읽고 쓸 줄 안다면 굳이 순서대로 외울 것까지야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천자문을 순서대로 줄줄 외도록 한 공부방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암기식 위주의 공부를 한 세대인 나는 간혹 아름다운 자연을 보거나 예쁜 꽃을 보면 고등학교 시절 외운 시들이 생각나고 감성에 젖을 때가 있다. 시를 외우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일전에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데 중국의 각지를 다니면서 중문학을 전공한 교수님이 각 장소와 관련한 중국 시인들의 한시들을 멋지게 소개하는 것을 보고 저 많은 한시들이 머리 속에 들어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어디를 가든 풍부한 감성을 느낄 수 있겠구나 하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성 한시를 떠 올리는 것은 많은 한시를 외우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이전에 석고상을 반복해서 그리던 방법이 전혀 효과가 없는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반복하여 그리면서 얻어지는 일반적인 묘사의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정한 석고상을 반복해서 그리는 연습을 했다고 해서 다른 석고상을 그리는 방법을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보가 넘쳐 나는 시대에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를 얻어 집안의 유리창을 깨끗하게 닦는 즐거움을 가지기도 하지만 한 가지를 반복하고 집중해 완전히 몸에 익히는 일도 나름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 봄에는 화사한 꽃들과 어울리는 시 한 구절을 외워 흥얼거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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