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프로축구 승부 조작 사건은 축구계는 물론 체육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 시민구단이었던 대전시티즌은 소속 선수 일부가 승부 조작에 참여한 것으로 밝혀지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만년 꼴찌 구단을 지지했던 팬들은 충격에 빠졌고 팀의 맏형 최은성은 기자회견장에서 '살려고 뛰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다. 현장을 눈으로 목격했던 기자에게는 분노와 허탈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나름 사명감으로 K리그 현장을 취재했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후폭풍은 예상대로 거세게 불었다.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까지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검찰 수사까지 이어졌고 승부 조작에 가담했던 선수 중 일부는 스스로 세상을 마감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축구의 근간을 흔들었던 수치스러운 사건에 프로축구연맹 정몽규 총재는 "축구의 기본 정신을 저해하는 모든 암적인 존재는 도려내야 한다"며 사과했다. K리그 출범 이후 전례 없는 징계가 내려졌고 K리그는 일명 '조작리그'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렇게 2011년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최악의 '흑역사'로 기록됐다. 그리고 12년이 지났다. 승부 조작에 관여했던 이들은 과연 반성했을까? K리그를 취재하며 드문두문문 들려온 이야기로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버젓이 자기 이름을 걸고 축구교실을 차린 이들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타인의 명을 빌려 축구판에 돌아왔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개명까지 해서 축구 꿈나무들을 육성하고 있다.
반성하는 이들도 없고, 팬들도 용서하지 않았던 12년 전의 승부 조작 사건을 축구협회가 제멋대로 용서하려 한 것이다. 사면의 명분은 더욱 가관이다. "월드컵 본선 10회 연속 진출,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 화합 및 새 출발을 위해 사면을 건의한 일선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한국축구를 망쳐놓은 범죄자들과 월드컵 16강 진출이 무슨 상관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충분히 반성했다고 판단되는 축구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부여하는 취지"라는 설명도 이해할 수 없다. 반성했다는 이들이 남의 이름 빌려서 축구교실 차리고 뻔뻔하게 지도자 행세를 하고 있다는 말인가? 결국, 자기들끼리 꼼수 벌이다 비난 여론에 못 이겨 3일 만에 철회하는 '희대의 촌극'을 보여줬다.
축구장을 떠나간 팬들을 다시 불러모으는 데 12년이 걸렸다. 한 번 떠나간 팬들이 다시 축구장을 찾기까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축구협회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 촌극을 보면서 한국 축구를 이끄는 수뇌부들이 얼마나 무능한 조직인지 또 한 번 실감하게 됐다.
금상진 기자 jo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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