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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준 기자 |
'워라밸'을 직역하면 '일과 삶의 균형'이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일과 삶의 분리'를 떠올린다. 퇴근 이후 또는 주말과 같은 휴일에 살아가는 삶이 진짜 내 삶이며 직장은 단지 그때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한 수단과 같은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내 삶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한 조건으로 워라밸이 필수적인 요소와 같이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취업준비생들은 직업과 직장을 선택할 때 연봉, 워라밸, 고용안정성과 같은 실리적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꼽기 시작했다.
다만 이 같은 현상은 꽤 안타까운 모습으로 비쳐진다. 어쩌면 부가적인 조건일 수도 있는 분야에 매몰돼 자신이 종사하게 될 분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건만 보고 관심도 없었던 직종에 뛰어든 사람이 열정을 가질 수 있을리 만무하니 결국 수많은 신입 사원들이 힘들게 취업 문을 통과했음에도 퇴사를 선택하게 된다. 퇴근 후 여행을 다니거나 헬스장이나 댄스 학원 등의 취미 활동을 통해 직장에서의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을 견뎌내려 하지만 잠시일 뿐이다. 일시적인 달콤함을 맛본 사람은 다음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주할 직장에서의 쓴맛에 대해 더욱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워라밸은 어쩌면 노동 최적화와도 이어지는 말이라서 기업 입장에서 더 간절히 원하는 개념일 것이다. 기업은 정해진 노동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업무를 부여해 직원들의 업무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불필요한 추가근무를 차단해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은 비용을 아끼고 직원은 시간을 아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회사는 그럴 능력이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그럴 역량이 없다. 적절한 업무를 분배하지 못해 잔업만 늘리는 기업이 여전히 많고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하지 못해 근무 연장을 유발하는 직원도 많아서다. 공직 사회부터 여러 기업까지 관련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 워라밸의 대명사로 알려진 직종에서조차 야근에 시달린다는 친구들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어쩌면 워라밸은 환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워라블’(Work life blending)이란 단어가 뜨고 있다고 한다.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과 삶을 적절히 섞는다는 뜻이다. 일을 통해 삶의 가치를 구현하려는 방식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반나절 이상 마주할 직장에서의 삶도 행복해야 비로소 자신의 삶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신조어다. 중요한 것은 언제 퇴근하는지가 아니라 퇴근할 때까지 어떤 일을 하느냐라는 거다.
물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직업으로 선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취업시장에서 현실을 제쳐두고 자신의 관심사를 직업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마치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친구들은 일에서 만큼은 사치를 부렸으면 좋겠다. 이전 직장에서 힘들게 고생한 만큼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이제는 다들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심효준 기자 sharp7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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