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본부 전문무역상담센터 전문위원·관세사 나지수 |
배경을 정리하면, 2019년 7월 일본은 일본의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애칭 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리지스트 등에 대해 수출 규제에 나섰으며, 8월에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 국가목록)'에서 제외했다. 이 결정은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피고 기업이 배상하라는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고 해석된다.
화이트리스트란 일본 정부가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허가 등 관련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리스트를 의미한다. 일본은 전략물자에 대해 구체적인 규제품목을 리스트로 관리하는 '리스트 규제'와 모든 품목을 규제하는 '캐치올 규제'로 구분하고 있는데, 우방국에 대해서는 화이트리스트 국가로 지정해 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4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화이트리스트 국가로 지정됐다.
그러나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가 제외되면서 수출기업이 경제산업성의 사전 심사 없이 3년에 한 번 '포괄 허가'를 받던 것이 '개별 허가'로 전환되어 사전 신고 후 점검을 거쳐 인증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우리나라도 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국(전략물자수출입고시 규정)인 '가' 지역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가의2' 지역으로 세분화해 분류했다. 국민도 분노해 'NO JAPAN'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WTO 근본원칙인 차별금지 의무, 특히 최혜국대우 의무 등 3가지 조항 위반으로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를 WTO에 제소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 기업과 정부는 핵심 소재 주요 품목에 대한 국산화 전략을 펼쳤고 단기간에 포토리지스트 등 의존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완전한 국산화와 수입 경로 다변화를 이루진 못했으며, 최근 미·중 간 무역 갈등이 반도체 산업으로 옮겨가면서 양국의 압박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무역만 놓고 본다면 일본의 수출 규제 해제는 우리 반도체 기업에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무역협회가 '한·일 신사업 무역 회의'에 앞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수출기업의 63.3%가 '한·일 정상회담이 사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그 중 '기업인 간 인적교류 증가(60.4%)', '대일본 수출증가(58.3%)'를 높게 평가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약 십여 년 전 일본에 유학했을 당시 일본인 친구가 '전시(戰時)경제'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내가 일본을 떠나기 전에야 어렵사리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친구는 내게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비로소 한국이 겪었을 고통에 대해 깊이 알게 되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영상을 통해 일본 문화를 배우는 수업에서 일본인 교수님이 '붉은 수수밭(1998, 중국)' 등 피해국의 시점에서 항일 운동에 대해 다루고 있는 영화를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에게 보여준 적도 있었다.
물론 여전히 일본 내 군국주의로 역사를 왜곡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으며, 사람의 생각은 다르니 이를 보편화할 수 없고, 내가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일 수도 있지만, 당시 충격과 위로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긍정적 변화를 느끼게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문화강국으로 대표되던 일본은 백범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처럼 한국에 그 타이틀을 넘겨주게 됐고 양국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역사적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의 그날에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경제, 정치, 외교적 측면만이 아니라 감정적 협력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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