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은 초나라의 항량(項梁)과 그의 조카인 항우(項羽)를 섬겼으나 중용되지 않아 불만이 많았다. 그러다가 한왕 유방(劉邦)의 수하가 되어 결국 대장군이 되었다. 그는 어려서 매우 가난했지만 야망이 있어 항상 칼을 차고 다녔다.
하지만 끼니조차 제대로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해 정장(亭長)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다 쫓겨난다. 그러다가 강가에서 빨래하던 아낙네에게 밥을 얻어먹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한신을 거렁뱅이에 무능력한 인물로 취급했다.
진나라 말, 나라의 국운이 기울면서 난세가 되자 항우가 그의 숙부인 항량과 함께 군사를 일으켰는데 한신은 이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미천한 신분이라는 이유로 요직에 중용되지 못했고 한직으로만 전전했다.
한신이 불우하던 젊은 시절에 시비를 걸어오는 시정(市井) 무뢰배의 가랑이 밑을 태연히 기어나갔다는 일화 때문에 자신의 재능보다 무시되기도 하였다. 이는 과하지욕(?下之辱)이라는 고사가 생겨날 정도로 한신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다.
이런 이유뿐만 아니라 항우의 성품이 거만하여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자 결국 항우를 떠나 유방(劉邦)의 진영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유방의 휘하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군법을 어긴 죄로 목숨이 경각에 달했는데 하후영이 한신의 탄식을 듣고 살려주었다.
하후영은 한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승상 소하(蕭何)에게 추천하였고 소하는 한신의 재능을 인정하였다. 소하는 유방과 함께 군사를 일으킨 사람으로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소하는 한신이 한나라 진영에서 달아나자 그를 다시 데려와 유방에게 천거하였고, 유방은 파격적으로 삼군 총사령관인 대장군에 임명하였다. 이쯤에서 자제했으면 되었건만 경거망동이 그만 화를 불렀다.
한신은 크게 공을 세우자 유방에게 제나라 왕(齊王) 자리를 요구했다. 결국 그는 모반죄로 체포되어 참살되었다. 이때 한신은 그 유명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을 남기며 죽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게 밥 한 끼를 준 표모에게 천금이나 되는 재물을 준 통 큰 사나이였다. 여기서 새삼 밥 한 끼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난 3월 초에 난생처음 출판기념회를 했다.
65년 희로애락 인생사를 담은 저서 <두 번은 아파봐야 인생이다>의 출간이 모티프였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출판사 출판 비용은 지인들에게서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조달했다.
그렇게 신세를 톡톡히 진 지인들께 보답하려면 반드시 출판기념회를 열어야만 했다. 그래야 저술한 책을 드리고, 음식까지 대접할 수 있어서였다.
목척교 앞 대전트래블라운지 3층에서 열린 나의 첫 출판기념회는 전국 각지에서 오신 손님들로 마치 장날을 맞은 저잣거리인 양 북적였다. 어찌어찌 행사를 마친 뒤 축객(祝客)들을 모시고 예약된 식당으로 갔다.
각자의 식성이 다르므로 삼겹살과 동태찌개, 김치찌개로 60인분을 예약했는데 주효했다. 나는 테이블을 일일이 돌면서 술잔에 술을 채워드렸다. "홍 작가, 오늘 정말 멋있었어!"라는 칭찬에 감사의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지금 또 다른 책을 내고자 열심히 쓰고 있다. 반드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그 옛날 한신이 '일반천금'을 실천했듯 나 또한 그에 대충 접근하는 일식십동(一食十動)의 실천으로 그동안 내가 신세를 진 분들께 맛난 음식을 듬뿍 대접하고 싶다.
홍경석/ 작가. <두 번은 아파 봐야 인생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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