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윤 전 학장 |
오래전 한 지방도시의 미래를 위한 별 힘없는 백서를 만드는 계기에서 자치단체장으로부터 참으로 걸출한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정치가에게서 듣기는 참 어려운 얘기지만 저는 "재임 중에 계획만 세우도록 하겠습니다"는 대부분 재임기 이내에 마칠 것을 우선하는데 이런 괴짜도 있구나 했던 시간이었다.
걷고 묻고 머물며 잘살기 위한 주제로 수많은 전문가가 내놓은 크고 작은 답들이 산재한 도시는 늘 많은 고민을 지니고 있지만 쉽게 달라지지 않을 도시의 문제에 잠잠히 다가가 본다. 도시를 인지하는 첫 번째 사고는 도시의 기념비적인 특별함이거나 도시의 풍요와 화려하게 치장한 도시의 표피일 듯싶다. 대부분은 이를 보고 상대적인 작고 여린 초라함마저 느끼면서도 언젠가 저 높은 건물이 내 것이 될 것이라는 배포만큼이나 허망함의 경계 사이에서 소외, 이룰 수 없는 꿈의 높다란 벽을 개인의 외로움으로 느낄 수도 있다.
네덜란드 혈통의 미국 화가 E. Hopper는 도시의 다양한 일상에서 보는 사유의 단편들을 매우 단적인 기조로 화폭에 담았다. 작게 담긴 화면에서도 도시는 매우 꿈틀거리고 우리의 의식을 통해 많은 도시의 씁쓸함을 불러내기도 한다.
분명 도시는 대단한 힘을 지닌 거인인데 비해 작고 외로운 개인과 우아한 도시를 느끼게도 하나 한편 초라하게 개별화된 나, 그 초상을 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도시에 다가가다(Approaching a city)"를 보며 도시는 무한한 상상력과 가능성을 지녔음을 느낀다. 그림 한 장으로 감상에 빠졌다고 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유란 늘 공허하지 않은 실체에 다가가는 길목이 된다. 도시가 지닌 단편적 장면들을 한 장의 화면에 몰입한 수학적 문제방식에 기대어 도시의 꿈틀댐을 인상주의나 낭만주의의 온유로 표출하기보다는 쓸쓸함과 소외를 느끼는 개인이 나타나도록 끌어냄에서 도시에 다가가다 는 기술적 미장센(장면계획)의 커다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하고자 함은 바로 이런 도시의 웅대함을 바탕으로 개인이 존속하는 영역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도시에 대해서 얼마나 긍정하고 있으며 부정을 바탕으로 성장한 사고는 얼마나 현실에서 가능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미 오래전 주차장이 문제 되지 않을 시절 거구의 박물관을 도시의 안방 안에 두었고, 멀찍이 있을 것들을 일상의 곁에 두기도 해서 지금은 주차 걱정 없이 걸어서 가거나 느리게 달리는 멋진 더블데커(2층 버스)나 지하철로 가면 되는 런던의 국립박물관이 바로 이웃집에 있었음을 깨닫고 이제는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들에 대한 답의 하나로 제시한다.
당장 주차장을 없애자면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겠지만 우선 긴장을 풀고 생각해 보자. 도시재생에서 해법으로 낸 원룸 짓기가 불가피하다면 차라리 주차장을 공동으로 모으도록 필로티는 줄이고 거리에 좀 더 나은 방법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덩그럼이 비워진 썰렁한 가로공간이 동네 주방, 뜨개질 방, 과자가게 등으로 옹기종기 채워지면 거리는 조금 온기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주차장은 해결하기 어려운 얘기니 차차 하기로 하고, 뉴욕처럼 갈 것인가 아니면 동네 시끄러운 공원을 공동의 주차장으로 바꿀 것인가. 아직 이 문제는 누구도 알맞은 답을 내기 어려운 과제이긴 하나 줄여가는 것이 답이 될 것이라 여긴다. 동네 얘기는 할 얘기가 많은 도시의 맥박 같은 곳이다. 모든 건물 안에 주차장을 두지 않았고 이웃에 박물관을 두었던 뉴욕과 런던의 얘기에 조금은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 김병윤 대전대 전 디자인아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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