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천안에서 호남과 영남으로 길이 갈리었다. 유래에 의하면, 여진족의 침입으로 전장에 차출된 영남지방 선비 유봉서(왜구의 침략으로 아내를 잃은 홀아비)가 '능소'라는 어린 딸과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딸과 동행이 불가하지 않은가? 땅에 버드나무 지팡이를 꽂고 "이 지팡이에 잎이 필 때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며 딸을 주막에 맡기고 떠났다. 이후 과거 보러 가던 전라도 선비 박현수가 이 주막에 머물게 되었는데, 능소와 인연을 맺고 혼인을 약조한다. 박현수가 장원급제하자 당시 세도가의 정혼 압력이 대단했으나, 떨치고 능소와 재회 해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한다. 이때 유봉서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고 번져 이곳에 버드나무가 많다고 한다. 이래서 능소버들, 또는 능수버들이라 따로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 시가와 그림, 이야기 등속에 수없이 등장한다. 물바가지에 띄운 버들잎은 세간에 많이 회자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두 번 째 왕비 신덕왕후는 이성계가 심한 갈증으로 물가에 이르자, 물그릇에 버들잎을 띄워, 급히 마시다 체하는 일이 없도록 한 지혜로 간택 받았다 한다.
안치행이 작곡하여 희자매가 부른 가요 <실버들>은 김소월의 시이다. "실버들을 천만사(千萬絲) 늘여놓고도 /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 이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 / 한갓되이 실버들 바람에 늙고 / 이내 몸은 시름에 혼자 여위네 / 가을바람에 풀벌레 슬피 울 때에 / 외로운 맘에 그대도 잠 못 이루리." 원용하지 않았겠지만,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시 <녹양(綠楊)이 천만사(千萬絲)인들>에도 유사한 내용이 전한다. "녹양(綠楊)이 천만사(千萬絲)인들 가는 춘풍(春風) 매여두고 / 탐화(探花) 봉접(蜂蝶)인들 지난 곳츨 어이하리 / 아모리 사랑이 중(重)한들 가는님을 어이하리."
버드나무와 함께 곧잘 선뵈는 것이 꾀꼬리다. 꾀꼬리 역시,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를 시작으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런 사정으로 익숙하다보니 텃새로 알고 있지만 실은 여름철새다.
흔히 목청이 고우면 꾀꼬리 목소리 같다고 한다. 꾀꼬리 소리는 청아하면서도 부드럽다. 새 종류치곤 소리가 퍽 다양한 편이고 음역이 넓다. 32가지 소리 굴림이 있다고 한다. 듣다보면 변화무쌍한 고저장단에 빠져든다. 가던 길 멈추고 절로 귀 기울이게 된다. 황포 입고 좌우를 둘러보며 노래하는 자태도 일품이다.
마상청앵도, 김홍도, 종이에 수묵, 117×52.2㎝, 보물1970호, 간송미술관 소장 |
등장하는 모든 사물이 사선으로 배치되어있다. 심지어 제시까지 강조 글자를 사선으로 구성하였다. 가지사이 오가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꾀꼬리 노래 소리에 흠뻑 취한 '멈춤'을 강조하려는 것은 아닐까? 김홍도의 그림, 특히 대부분의 풍속화에는 배경이 없다. 표현하고 싶은 내용을 한두 가지 소재만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 아닐까? 특히 이 그림에는 여백이 강조되었다.
화제도 감상해보자. "꽃 아래 고운 여인이 천가지 소리로 노래하고(佳人花底簧千舌) / 시인 술상 앞 밀감 한 쌍(韻士樽前柑一雙) / 금빛 베틀 북으로 버들 사이 어지러이 오가더니(歷亂金梭楊柳岸) / 안개와 비를 엮어 봄 강에 베를 짜네(惹烟和雨織春江) / - 기성유수고성관도인 이인문이 감상하고, 단원이 그리다.(碁聲流水古松?道人 李文郁證 檀園寫)"
글과 그림 모두, 소리와 색, 여백과 소재, 움직임과 멈춤이 적절히 묘사된 명작으로 꼽힌다. 게다가 꾀꼬리와 버들,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고 배려한다. 서로 빛난다. 어울림을 생각해 본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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