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
정부와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의 예방과 근절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쉽게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수많은 문제 제기와 대책이 나왔지만, 저는 오늘 칼럼을 통해 학교 현장의 선생님들이 제기하는 두 가지 현상에 주목하여 논의해보고자 합니다.
하나는 학교폭력의 원인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가정 교육의 부족'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면 가해자 부모가 참석하는데, 가해 학생과 그 부모가 비슷한 인성을 가졌다는데 놀란다고 합니다. 물론 다 그렇지 않겠지요. 인성이 훌륭한 부모 밑에서도 유독 말썽꾸러기 자식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가해 학생과 그 부모의 사고방식과 말투까지 닮아있음을 발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배웁니다.
또 하나는 학생들이 교실 안에 대등하게 앉아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과 서열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학교폭력의 하나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고위직의 아들이, 말로써 피해 학생에게 모욕을 주고 괴로움을 주는 언어폭력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지요. 옛날에는 결손 가정의 아이가 저지르는 학교폭력이 많았었는데, 요즘은 결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보다도 오히려 유복한(?) 집안의 아이들이 학교폭력에 가담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오히려 결손 가정의 아이가 피해자인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동안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결핍'이 문제였는데 지금은 '사랑의 과잉'이 문제가 아닐까요.
그러나 교실 안의 계급과 서열화 자체를 근절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도 최근 여러 해 동안 굳어진 상식은, 계급과 서열화를 완화하는 계층 이동은 불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에 토대를 두어 '삶의 기회' 확대를 위해 힘을 쏟는 것이지요. 많은 학자가 분석하기로는 학교가 계층 이동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교육과정 자체가 계층을 상정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적인 학교 교육의 방향은 성공 신화에 제동을 걸고, '모든 시민은 평등하다.'라는 문화에 바탕을 둔 '좋은 삶' 또는 '삶의 기회' 교육이 바람직합니다. 이것은 학교폭력이라는 어느 한 상황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겠지요. 그러면서 당장은 어려워도 꾸준히 추진해야 할 교육 목표이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나라가 계층 이동성을 그 나라의 사회 정의를 가늠하는 핵심 잣대로 설정하고 있지요. 특히 영국에서는 좌파나 우파 정당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거기서 나온 산물이 '사회계층이동성위원회'의 활동입니다. 계층 고착화를 비판하는 정기 보고서를 꾸준히 발간하면서, 계층 이동 문제를 효과적으로 제기해오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도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뜻하는 '삶의 기회' 확대가 핵심적인 아젠다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다시 학교폭력으로 돌아와서 폭력 행위에 대한 처벌도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이른바 '문제 학생'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말 한마디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 과잉이든 사랑 결핍이든, 그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머리의 힘'보다 '마음의 힘'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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