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원 본부장 |
"본부장님, 정말로 ○○은행에서 제게 직접 전화가 와 해결됐어요"라며 너무 감사하다고 연신 고마워했다.
사연인즉, 우연한 기회에 무대 팀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A 감독이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약간의 은행대출이 필요한데 최근 은행 금리가 매우 높아지고 대출도 쉽지 않아서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본인은 그것을 알아봐 달라고 심각하게 부탁한 게 아니라 지나가는 이야기였다고 하였지만, 필자는 이를 지나가는 이야기로 듣지 않고 며칠 후 우리 재단의 주거래은행에 연락해 그 친구의 어려움을 들어보고 해결해줄 수 있으면 처리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정확히 어떻게 해결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은행의 대출담당자가 직접 우리 감독에게 전화해 상황을 파악하고 방법을 알려준 듯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기왕에 도와준 거 잘 처리되었다니 좋은 역할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사실 공연에서도 지나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과거 대전예당에서 근무할 때 고양시에서 공연한 세계적인 테너 호세쿠라 공연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형님의 "대전에서도 이런 공연을 보고 싶다"는 지나가는 말에 바로 다음 해에 대전 초청공연을 성사시킨 일도 있었다. 연주자들끼리 '우리 언제 같은 팀을 만들어서 연주해봐요.'라고 지나가는 이야기로 했던 말이 실지로 같은 팀이 되어 연주활동을 하는 경우는 쉽게 볼 수 있다.
오래전 일이지만 필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의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아 분장실까지 어렵게 찾아가서 마에스트로에게 언젠가 대전에서의 공연을 초청하겠다고 호기롭게 얘기했던 적이 있다. 그때 무티는 영혼 없이 지나가는 이야기로 '스페리암(기대해 봅시다)'라고 대답했었는데, 한참을 지났지만 정말로 빈 필하모닉과 함께 대전을 찾아와서 연주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의 말이라는 게 아무리 지나가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입 밖으로 나오면 힘을 가진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지나가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또 그런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흔한 예로는 "우리 조만간 밥 한번 먹자","언제 차 한잔 같이하자"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들이 꼭 지켜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지나가는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고 나중에 같이 식사하자는 이야기는 정말로 약속을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최근 어느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 임시완은 지나가는 이야기라도 그런 식사 약속은 적어놓고 꼭 지키고, 언제 보자는 얘기에 정말 집에 찾아가서 상대방이 오히려 부담을 가진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을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봤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또는 내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스쳐 지나가면 어떻게 하지, 내가 정말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이해를 못 하거나, 누군가가 절실한 결핍으로 도와달라고 하고 있는데 내가 못 알아듣는다면 이것 또한 문제이자 큰 상처가 될 것이다.
대화에 있어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그 의도를 이해하고 제대로 대응해주는 것이다. 우리의 대화법에 '경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청(傾聽)의 의미는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이며, 그 내면의 동기와 정서에 귀 기울이며 이해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경청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를 살고 있다. 상대방의 말에 대한 이해와 그 내면의 의미를 알고 대응해 준다면, 요즘처럼 불통의 시대는 많이 개선될 것이다. 그것이 용서든 화해든 협력이든 말이다. 경청이야말로 경계를 잇는 소통이며, 발전을 이룰 덕목이라는 생각이다. 오늘은 전에 언제 밥 한번 먹자고 한 사람한테 연락해서 그날이 오늘인데 시간이 가능하냐고 물어봐야겠다.
/최대원 세종시문화재단 공연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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