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실까요.
오래 전에 본 영화 '빠삐용' 에서 가장 인상적(印象的)인 장면(場面)은 빠삐용이 꿈에서 자신을 기소(起訴)한 검사(檢事)와 대면(對面)하는 장면입니다.
억울한 살인 누명(陋名)을 쓰고 절해고도(絶海孤島)의 감옥(監獄)에 갇힌 빠삐용은 어떻게든 탈출해서 누명을 벗으려하지만, 탈출(脫出)은 실패하고 독방(獨房)에 갇혀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악몽(惡夢)을 꿉니다. 먼 사막(砂漠)의 지평선(地平線)에 검사가 나타나 빠삐용을 바라보자 빠삐용은 외칩니다.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검사는 말합니다.
"맞다. 너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지만 살인(殺人)보다 더한 죄(罪)를 저질렀다."
빠삐용은 억울(抑鬱)하다는듯 대꾸합니다.
"그게 뭡니까?"
검사가 단호(斷乎)하게 말합니다.
"인생을 낭비(浪費)한 罪다!"
빠삐용은 고개를 떨굽니다.
"아… 나는 유죄(有罪)다."
젊었을 때 이 장면을 보고 '인생을 낭비한 죄' 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빠삐용의 자유를 향한 초인적(超人的)인 집념(執念)보다 몇 배나 더 큰 울림이었습니다.
검사의 대사(大事)는 이렇습니다.
"Yours is the most terrible crime a human being can commit. I accuse you of a wasted life"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최악(最惡)의 범죄(犯罪), 인생을 낭비(浪費)한 罪로 너를 기소(起訴)한다."
'人生을 낭비한 죄'를 물을 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현재를 충실히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삶이 잘못 되었을 때 다시 뒤집어 놓을 수 있는 모래시계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人生은 한번 출발하면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기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눈이 녹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눈을 밟아 길을 만들고, 작은 것을 얻어도 큰 기쁨을 느끼며, 일상(日常)의 소박(素朴)한 것에 감사하며 삽시다.
남을 배려하며 사는 다정한 친구들 |
그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면 불편한 관계가 이어집니다. 저는 내장탕이나 순대국, 생선회를 먹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것도 못 먹느냐고 핀잔을 주게되면 불편한 관계로 이어집니다.
제 이웃들 중에는 말꼬리를 잡아 사사건건 공격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도 그분과는 불편한 관계로 이어지지 않고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성격이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를 그토록 미워했던 아내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제 새끼들의 엄마였으니까요. 그래서 제 아내는 제 새끼들을 잘 길러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저는 제 아내를 저 세상으로 보낼 때 제 품에 안고 있다가 보냈고, 화장터에서 나온 유골도 제 품에 안고 무덤까지 갔습니다.
유골함이 따뜻하더군요. 거기에 제 사랑의 체온까지 플러스 되었으니 추운 겨울, 꽁꽁 언 땅속에서도 따뜻한 행복을 느끼며 지내고 있을 겁니다.
우리 이웃들과 내 자녀들은 남의 다른 점을 인정하며 삽시다. 그래서 인생을 낭비하지 맙시다.
인생을 낭비한 죄로 인하여 빠삐용은 징역형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 갈마동에는 좋은 이웃들이 많습니다. 다른 점을 인정하게 되니 좋은 이웃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김용복/ 평론가, 극작가
김용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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