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학 교수 |
본디 법치주의는 인치나 도덕정치라는 미화 속에 숨겨진 '사람에 의한 자의적 지배'를 방지하고자 하는 이념 하에 출현하였다. 즉 사람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국가원리이다. 이는 인치와 신분제로 대표되는 중세와 결별하고 개인을 주체로 인정하고 민주주의가 도입되는 근세로 나아가는 시온의 대로이었다. 그렇기에 법대로 하자는 것은 어쩌면 인류 역사의 위대한 진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법대로 하자는 말이 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법치주의에 대한 잘못된 관념도 작용하였다고 본다.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이지, 단순히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님에도, 부지불식간에 법에 의한 지배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오류로 인한 병폐는 한둘이 아니어서 법치주의가 주는 혜택을 다 집어삼키고도 남을 정도이다.
입법영역을 살펴보자. 특정 사건 하나 해결하고자 만든 법은 법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준수하여야 할 진정한 규범으로서의 법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사건 하나 터지고,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곧바로 나오는 특별법 전성 사회에 살고 있다. 무슨 무슨 법이라고 속칭되는 법들이 바로 그들로서, 이들은 법의 핵심인 일반성과 보편성을 상실한 일회성 입법들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규범으로서의 법적 권위도 사라지고 졸속으로 배출된 법들이 충돌하고 모순되는 웃지 못할 모습들이 속출한다. 오죽하면 법을 해석하여 사건에 적용하는 작업의 가장 전문가인 판사들조차 특별법이 하도 많고 복잡하여 헷갈린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겠는가. 한마디로 자의적, 편의적 입법이 난무하는 법대로 사회이다.
어디 입법에서만 이런 일이 발생할까. 사법 영역에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법관은 오직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서만 재판하여야 함에도 언제부턴가 재판관이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를 먼저 따져보는 시대가 되었다. 정치적 사법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단순한 민사나 형사재판 당사자들이 자기 사건 담당 법관의 정치 성향을 확인하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넘어 절망을 느낀다.
그러면 시민 사회는 또 어떨까? 헌법적으로 자치가 보장되는 대학사회로 눈을 돌려보자. 언제부터인가 지성의 상징이라는 대학에서도 학내 갈등을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툭하면 세상 법정으로 발걸음을 옮겨 아귀다툼을 벌인다. 얼마든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을 쉽게 세상 법에 맡기는 대학에 더 이상 헌법적으로 대학자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한마디로 법대로 하자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처럼 고소, 고발이 남발되는 국가는 없다는 자조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뉴스 한번 시청하여 보자. 그 짧은 시간에 형법 각론의 온갖 범죄가 다 나온다. 또 법학 공부해본 적 없는 정치 평론가들은 마치 변호사라도 된 것처럼 마구 법해석을 해대고, 범죄가 된다, 안 된다를 자신 있게 내뱉는다. 시간 내고 돈 들여서 로스쿨에서 공부할 필요가 전혀 없는 사회가 되었다. 가히 법률만능주의 사회라 칭할만하다.
이 모든 현상은 법치주의를 잘못 인식하여 발생하는 문제들로서 법은 국가 구성원의 총의가 모인 결정체라는 엄중함을 집어 던진 채 자신의 이기적 욕구 만족을 위한 값싼 도구로 전락시킨 결과물이다. 법의 기본원리와 정신은 사라지고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같은 특별법 전성시대, 정파적이고도 자의적 해석이 너울대는 사법불신시대, 자율이 실종된 고소 만능 왕국이 지금 우리 사회의 숨길 수 없는 자화상이다. 영화 속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닌 '진정한 법'이 죽은 사회가 되었다. 우리가 그 법을 죽였다.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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