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일장기가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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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일장기가 말하는 것

사회과학부 임병안 기자

  • 승인 2023-03-12 16:47
  • 신문게재 2023-03-13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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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일보 임병안 기자
2021년 10월 23일 대전 한밭종합운동장에 일장기가 내걸린 적이 있다. 이날은 한밭종합운동장에 6100여 명이 방문해 관중석을 가득 채웠으나 일장기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전하나시티즌에서 활약하는 일본 국적의 마사 선수를 응원하고 우정의 상징으로 일장기를 내걸었다는 것을 팬들도 이해했던 것이다. 기자 역시 그날의 일장기는 놀라우면서도 만국 공통언어 스포츠의 가능성을 보았던 때로 기억한다.

지난해 8월에는 진짜 일장기를 보았다. 붉은 천으로 만든 홍원을 흰 광목천 위에 박음질한 일제시대 제작된 일장기였다. 뭉클한 감정으로 다가온 것은 일장기가 태극기로 덧칠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일제시대에 보급된 일장기를 반대로 대한민국 정체성을 담은 태극기로 만들어 만세 시위 때 사용되던 것일 수 있다. 적어도 일제 패망 직후 광복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집안 어딘가 있던 일장기를 꺼내와 급히 태극기를 그려 '독립만세'를 외치는 용도였는지도 모른다.

제목 없음
2021년 10월 대전 한밭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된 프로축구 경기에서 팬들이 태극기와 일장기를 나란히 내걸고 응원하고 있다.
대전여자고등학교에 가면 '쓰러트린 비석'이 있다. 그 비석의 정확한 명칭은 황국신민서사비이고, 비석에 새겨진 글씨는 "우리는 황국신민이며, 충청으로써 군국(君國·임금과 나라)에 보답하자"라고 말하고 있다. 1937년 이곳에 대전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가 개교할 때 정문 옆에 세워놓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멈춰 외우도록 했다. 3·1운동이 일어나 만족의 자긍심을 높이자, 일제는 이를 짓누르기 위해 우리가 스스로 신민임을 외우도록 강요한 상징물이다. 2019년 공사 중 대전여고 흙 속에 묻혀 있던 것이 우연히 발견됐고, 지금은 기립의 반대로 쓰러트려 치욕을 씻되 잊지 안고 극복할 교육의 장소가 되고 있다.

세종에서 자신을 목사라고 주장하는 이가 지난 3·1절에 일장기를 내건 사건은 중도일보를 통해 처음으로 뉴스 형태로 타전됐다. 목사라고 주장하는 그는 엊그제 일제 강제동원 피해에 연대를 상징하는 소녀상에 앞에서 일장기를 흔드는 일을 벌였다. 그는 3·1절 일장기 사태를 "화해와 평화의 상징을 생각했다"라고 말했다니 깊은 한숨을 내쉴 뿐이다.



일제시대 대전에 중앙의원을 개원해 첫 조선인 의사가 된 김종하(金鍾夏·1900~?) 씨는 1919년 3월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일 때 3·1만세운동에 동참한 억지 죗값으로 징역6월에 집행유예3년의 옥살이를 했다. 그에게 형벌을 내리기 위해 일본인 판사는 피고석에 김종하에게 "조선의 독립이 무엇이냐"고 어깃장을 놓았고, 김종하는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분리되어 스스로 정치를 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말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우리민족의 독립을 외치고 정체성을 밝혔다는 이유로 구속하고 갖은 고문으로 목숨까지 앗아간 일본제국주의 잔혹성을 잊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날을 기억하는 날에 일장기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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