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일보 임병안 기자 |
지난해 8월에는 진짜 일장기를 보았다. 붉은 천으로 만든 홍원을 흰 광목천 위에 박음질한 일제시대 제작된 일장기였다. 뭉클한 감정으로 다가온 것은 일장기가 태극기로 덧칠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일제시대에 보급된 일장기를 반대로 대한민국 정체성을 담은 태극기로 만들어 만세 시위 때 사용되던 것일 수 있다. 적어도 일제 패망 직후 광복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집안 어딘가 있던 일장기를 꺼내와 급히 태극기를 그려 '독립만세'를 외치는 용도였는지도 모른다.
2021년 10월 대전 한밭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된 프로축구 경기에서 팬들이 태극기와 일장기를 나란히 내걸고 응원하고 있다. |
세종에서 자신을 목사라고 주장하는 이가 지난 3·1절에 일장기를 내건 사건은 중도일보를 통해 처음으로 뉴스 형태로 타전됐다. 목사라고 주장하는 그는 엊그제 일제 강제동원 피해에 연대를 상징하는 소녀상에 앞에서 일장기를 흔드는 일을 벌였다. 그는 3·1절 일장기 사태를 "화해와 평화의 상징을 생각했다"라고 말했다니 깊은 한숨을 내쉴 뿐이다.
일제시대 대전에 중앙의원을 개원해 첫 조선인 의사가 된 김종하(金鍾夏·1900~?) 씨는 1919년 3월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일 때 3·1만세운동에 동참한 억지 죗값으로 징역6월에 집행유예3년의 옥살이를 했다. 그에게 형벌을 내리기 위해 일본인 판사는 피고석에 김종하에게 "조선의 독립이 무엇이냐"고 어깃장을 놓았고, 김종하는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분리되어 스스로 정치를 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말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우리민족의 독립을 외치고 정체성을 밝혔다는 이유로 구속하고 갖은 고문으로 목숨까지 앗아간 일본제국주의 잔혹성을 잊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날을 기억하는 날에 일장기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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