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열 수필가 |
우리 사회는 혼밥·혼술·혼영에서 독거·비혼·무자녀 고독사 등 홀로(Solo) 경향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사회의 연결망에서 어쩔 수 없이 이탈되거나 스스로 행복 찾아 홀로됨을 선택한 이들은 공동체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지금처럼 단자화(單子化)되는 개인주의 시대에 지속가능한 우리 사회를 위해 가장 큰 게임체인저를 기다리고 있는 영역은 고령화와 저출산이다. 그동안 이 난제를 풀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예산을 쏟아부었어도 실마리를 찾기가 영 쉽지 않다. 경제학자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처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성싶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OECD 나라의 공통된 현상이나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저출산율에다가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2022년 기준으로 인구감소 국가로 가는 문지방을 넘었다. 이미 고령화는 연금, 보험, 요금, 농촌소멸, 식량 자급, 주거형태 등 사회의 많은 부분에 걸쳐 긴장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도 국민연금 개혁이나 지하철 무임승차 나이를 올리자는 논쟁에서 보듯이 해결책 마련 또한 쉽지 않다. 다 함께 살기 좋은 사회는 미래세대에게 무거운 짐을 넘기지 않으면서 구성원 간 몫이 슬기롭게 안배될 때 선물처럼 찾아오는 것일 텐데 말이다.
인생에서 가장 신비로운 일은 모든 것은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태어나서 자라고 병들고 사라지는 과정은 비가역적인 생명 리듬의 순환과정이다. 강물은 흘러가고 나무는 철마다 변하듯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나이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사실 나이는 사회적인 약속에 불과하지만, 몸의 노화현상이 일어나니 나이 듦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런데 나이 듦에 왜 용기가 필요할까.
세월 따라 신체의 쇠퇴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신은 익어서 발효되어야 한다. 나이는 나이다워야 한다.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과 말을 위해서는 내 마음대로가 아닌 욕심을 거스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인인 공자는 나이 칠십에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고 했다.
나이 듦에 타인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허다한 사건들은 마음에 잔뜩 찌꺼기가 붙어서 사리를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로움 상실감 무력감 두려움 미워함 섭섭함 시기심 우월감 나 잘남 등이 판단을 흐리게 하는 오물들이다. 늘 감정이 부딪히는 마음에 때가 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소리가 들어오는 관문인 귀를 열어 잘 듣고, 욕망이 들어오는 시선의 각도를 낮추어 평정심을 유지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나다움'이라는 궁극의 질문을 통해 삶의 방식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이상기후, 코로나 사태, 튀르키에 지진, 쳇GPT 출현 등 막연히 불안하고 불확실한 세상이다. 그럴수록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절제되지 않은 욕망의 궤도에서 내려 삶의 방식을 덜 먹고 덜 소비하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저마다 영원히 만족하게 할 수 없는 욕심의 부림을 받고 산다면 공동체의 행복은 뒷전이고 오직 나의 행복만을 부르짖는 '욜로(YOLO)' 사회가 될 것이다. 짊어야 했던 사회적 짐이 줄어드는 때부터 다수가 추구하는 획일화된 욕망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삶의 기준을 세워 살아간다면 좀 더 향기 나는 세상이 되지 싶다.
나만의 시선으로 작고 낮은 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 주위를 둘러보며 일상에서 삶의 참다운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 배움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사람, 세상사에 묻혀 망각했던 자기다움의 날개를 찾아 비상을 꿈꾸는 사람이야말로 나이 듦에 진정 용기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옛 선비들이 사회적 짐을 벗고 꿈꾸었던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의 모습이고, 한 생각 바꾸면 찾을 수 있는 행복이 아니겠는가.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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