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떠날 줄 알아야 하는 세상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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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떠날 줄 알아야 하는 세상의 자리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3-03-10 10:44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통상적인 말을 차용한 창작품이 주목 받는 경우가 있다. 2005년 개봉한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도 그 중 하나이다. 외려 그 말을 사용할 때 영화가 원조인 것처럼 들먹인다. 그런 영화가 있었지 하면서.

지난해 MBC연예대상 공로상 수상자 이경규씨가 수상소감으로 한 말이다. "많은 분들이 얘길 합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 정신 나간 놈입니다. 박수칠 때 왜 떠납니까? 한 사람도 박수를 안 칠 때까지, 그때까지 활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식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시청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희극인으로서 한 최선, 최고의 우스개다. 한 편으론 진리를 일깨운 것이다. 모두 파안대소(破顔大笑) 했다는 것은 떠날 때 떠나야 함을 알고 있다는 것 아닌가?

놀이에 '자리 뺏기' 또는 '자리 차지하기'가 있다. 자유롭게 늘어놓은 방석, 의자 또는 앉을만한 기구가 필요하다. 음악에 맞추어 율동 또는 주위를 맴돌다, 진행자 신호에 맞추어 마련해 놓은 기구에 주저앉는 것이다. 먼저 앉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앉지 못한 사람은 놀이에서 탈락한다. 구경꾼이 된다. 두 사람 이상이 동시에 앉으면 빼앗기도 하고, 가위바위보 등 다른 선별 방법으로 정하기도 한다. 기물을 줄여나가며 놀이는 계속된다. 최종 남은 한 자리에 앉는 사람이 우승자다.

한 순간 즐기고자 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삶 그 자체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평생 자리차지하기 놀이에 열중하며 사는 것 아닐까? 생명체는 생존하기 위해 먹이 활동을 한다. 그 외에 하는 대부분의 신체적, 정신적 활동이 놀이이다. 객석 또는 무대라는 자리에서 함께 한다. 누구라도 무대에 오를 수 있고,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기꺼이 관객이 되기도 한다. 놀이가 끝나거나 파하면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니,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산에 오르는 것은 내려오기 위해서 아닌가?



한 자리에 앉게 되면, 버티고 앉아 떠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놀이 본질을 모르는 것이요, 공사 구분이 안 되는 것이다. 자리는 공유하는 것이다. 만인의 것이다. 영구 소유할 수 있는 자리는 없다. 자리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매달리기도 한다. 그러다 일생 쌓아온 명성을 날리기도 하고, 가진 것 모두를 잃기도 한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은 참으로 볼썽사납다. 해당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멈출 줄 아는 사람, 내려올 줄 아는 사람,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이 멋진 사람이다. 그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모든 자리에는 역할이 있고 책임이 따른다. 자리만 탐하고 일하지 않으며, 그 자리 자체만 즐기는 사람도 있다. 역할은 잊고 엉뚱한 일에만 매진하거나 자신의 안위만 보살피는 경우도 있다. 과오가 있어도 알지 못하고, 알아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파렴치한도 있다.

남이 흔들어 떨어트리기도 하고 억지로 밀어내기도 한다. 그럴 경우 작은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간의 노고에 감사하고 위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자랑스럽게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지켜내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방법 동원하여 몰아내는 것도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공자는 현실 정치에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물론, 칭송하기도 한다.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해설을 참고해보자. <공자성적도>는 공자의 행적을 여러 장면으로 도해한 그림이다. 성적도(聖蹟圖)·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성적지도(聖蹟之圖)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공자가 노나라에서 4년 여 벼슬살이하는 동안, 백성은 길에 떨어진 물건이 있어도 줍지 않고, 상인은 저울을 속이지 않았다 한다. 도덕정치가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옆의 제나라는 노나라가 강성해지는 것이 두려웠다. 계책을 꾸민다. 노나라 군주는 음악과 여자로 미혹되게 하며, 공자는 많은 봉록과 지위로 유혹하자는 것이다. 군신 사이에 서로 반목하고 자중지란이 일어나도록 부추긴다. 이에 노나라에서 자신의 이상이 구현될 수 없음을 알고 공자가 떠나려 한다. 성질 급한 자로가 떠날 때가 되었다며 채근하자, 공자가 말한다. "며칠 있으면 주군께서 교제(郊祭·남쪽 교외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의식)를 지낼 것이다. 만약 그때 군주가 대부들에게 제사 지낸 고기를 나누어 주지 않으면 나는 그때 떠나겠다." 당연히 며칠이 지나도 고기는 오지 않는다. 공자와 그의 일행이 노나라를 떠난다. 제사고기를 주지 않았다고 떠날 좀스런 공자가 아니다. 왜 그랬을까? 군주의 허물을 들어내지 않기 위해서다. 군주가 환락에 빠졌다거나 다른 재상에게 허물이 있다고 해서야 되겠는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배려다. 자신이 손가락질 받을지언정 남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변명이나 내로남불 대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주어진 자리에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멈출 줄 아는 사람, 내려올 줄 아는 사람, 떠날 때를 아는 사람,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멋진 사람이다. 그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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