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연 교사. |
내가 신규교사로서 발령을 받고 3월 2일 교실에 들어선 첫날, 아이들에게 들었던 첫마디는 "안녕하세요?"가 아닌 이런 말이었다. 6학년 40명의 담임이 되어 긴장되지만 부푼 마음을 안고 교실에 드러선 그때에, 남학생들의 몸싸움으로 뒷문의 유리창은 와장창 깨져버렸다. 나는 준비해온 담임 소개는커녕, 바쁘게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찾아서 깨진 유리를 쓸어 담았는데,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비록 첫날에 눈물을 보여 창피하기도 하고, 담임으로서 체면도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따스한 우리 반 학생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시작한 첫날은 가끔 기억이 난다.
눈물로 시작된 나의 교직 생활은 눈물 마를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첫해에는 40~50명의 합창부 학생 지도를 맡았다. 당시에는 음악경연대회와 같은 예능경연대회가 많았고, 학교의 명예가 달린 일이기에 열심히 지도해야만 했다. 나 역시 열정과 패기로 달려들었으나, 현실은 연습이 싫어 도망 다니는 학생들 잡으러 다니느라 무척 힘이 들었다. 대학교 시절 목소리 성량이 좋다며 교수님께 '엄지척!'을 받았던 나는 교사가 된 지 6개월 만에 성대결절로 인어공주처럼 목청과 목소리를 잃고 말았다. 지도 경험과 요령이 부족했던 나에게는 무척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우리 합창부가 멋지게 무대에 서서 공연을 하고, '잘했다', '수고했다', 무대 뒤에서 서로 토닥일 때 나는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그 후에도 눈물의 사건들은 너무나 많았다. 기분이 나쁘면 책상을 내던지고 나가버리는 학생도 있었고, 책상 속 물건을 한 개씩 바닥에 던지는 학생도 있었다. 이 때문에 늘 내 앞으로의 교직의 길에 의문을 던지고 내가 교사로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과 걱정이 되었다. 특히 생활지도가 어려운 학생들을 만나게 되면 그 한 해는 눈물이 폭포를 이룰 정도였다. 그렇게 속을 썩이던 학생들도 졸업 후 찾아올 땐 어쩌면 그렇게 의젓해졌는지, 대견하면서도 얄미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가 참 고생스러웠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소중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나를 울게도 웃게도 많이 했던 순박하기도 하고 짓궂기도 했던 학생들이 이제는 성인이 돼 각자의 자리에서 멋진 역할을 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된다. '교학상장', 학생과 함께 배우고, 서로 가르치면서 함께 성장하는 그 뜻이 정말 딱 들어 맞는 거 같다.
지금의 교사로서의 나는 얼마나 성장하였을까? 신규교사일 때보다는 학생의 마음이 보이기도 하고, 학생에게 맞는 학습 방법과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스스로 교사공동체를 만들어 연구하기도 하고, 학생들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도 한다. 예전에는 선배 교사에게 조언을 묻고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내가, 이제는 후배 교사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주고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는 16년 차 부장교사 경력이 됐다. 그만큼의 세월 동안 나도 변했지만, 학교도 많이 변했다. 2023년의 학교는 2008년보다 학급당 인원수도 많이 줄고, 학습 여건이나, 업무 간소화, 교육혁신을 통한 교원복지가 많이 좋아졌음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실에서의 교육이 더 쉬워지진 않았다. 20년 전이건 지금이건 교육에는 지름길도 쉬운 길도 없다. 하지만 한해 한해 학생들의 행복과 성장을 기대하며 오늘도 정성을 다해 달려갈 뿐이다.
15년 전 옛 추억을 떠올리며, 그 때의 열정이 나에게 그대로 남아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래도 여전히 학생들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 주변의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학생들과 우리 사회의 미래는 너무나도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의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한 명의 사람만 있으면 그 아이는 바르게 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부모님, 학생, 선생님 모두가 자녀와 친구, 학생들에게 사랑을 주는 소중한 사람이 되어주기를 그래서 모든 학생이 건실하게 잘 커나가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위해 늘 헌신하시는 모든 울보 선생님들께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강지연 이화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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