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이임보(李林甫)라는 간신이 있었는데, 환관(宦官)에게 뇌물을 바친 인연으로 왕비에 들러붙어 현종의 환심을 사 출세하여 재상이 된 사람이다. 이임보는 황제의 비위만을 맞추면서 절개가 곧은 신하의 충언이나 백성들의 간언(諫言)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한번은 비리를 탄핵하는 어사(御使)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명군(名君)이시오. 그러니 우리 신하들이 무슨 말을 아뢸 필요가 있겠소. 저 궁전 앞에 서 있는 말을 보시오. 어사도 저렇게 잠자코 있으시오. 만일 쓸데없는 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소."
이런 식으로 해서 신하들의 입을 봉해 버렸다. 설령 직언을 생각하고 있는 선비라 할지라도 황제에게 접근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 "임보는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질투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배척하고 억누르는, 성격이 음험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고 말했다." -
그가 야밤중에 그의 서제 언월당(偃月堂)에 들어앉아 장고를 했다하면 그다음 날은 예외 없이 누군가가 주살(誅殺)되었으며 자주 옥사(獄事)를 일으켰으므로 황태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재상 지위에 있기를 19년 동안에 천하의 난리를 길러냈으나 현종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안녹산(安祿山)도 이임보의 술수를 두려워했으므로 감히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임보가 죽자, 양귀비의 일족인 양국충(楊國忠)이 재상이 되었다.
양국충도 재상이 되자마자 죄목을 하나하나 들어 현종에게 고하자 그제야 깨닫고 크게 화가 난 현종은 명령을 내려 그의 생전의 관직을 모두 박탈하고 패가망신과 함께 부관참시의 극형에 처했다.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이임보가 죽은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이 글의 화두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이다. 이는 입에 꿀이 있고 배에 칼이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 막역한 형님과 술을 나누었다. 문학박사답게 나의 신간 <두 번은 아파봐야 인생이다>를 읽은 소감을 예리하게 지적하셨다.
"아우는 글 속에 칼과 송곳이 들어있어! 어려서부터 고생을 너무 많이 한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그런 걸 모두 빼야 비로소 수필이라고 할 수 있지." 부끄러운 치부를 들킨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형님의 말씀대로 그동안 내가 쓴 글과 책은 사실 서중복검(書中腹劍)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달을 보고 별도 보고, 바람도 관찰하고 이름 모들 나무들까지 사랑해보라는 형님의 조언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언행과 심지어 글과 책에도 그러한 영향이 미치기 마련이다. '형님, 지적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형님 말씀 새겨 들고 정말 수필다운 수필 쓰겠습니다.'
3월 4일 오늘은 정말 뜻깊고 의미심장한 날이다. 난생처음으로 출판기념회를 하기 때문이다. 겨우 무명소졸의 작가임에도 이미 많은 분께서 참석하겠다는 연락을 주셨다.
내가 비록 험산 준령의 고달픈 삶을 점철했을망정 결코 허투루 살지는 않았구나 라는 안도감에 지난 나의 모범과 열정적 삶에 새삼 감사했다. 앞으로는 '서중복검'을 떨쳐내고 환여평석(歡如平昔, 원한을 버리고 옛정을 다시 회복함)의 고운 마인드로 만인에게 사랑받는 작가와 저서의 주인공이 되리라 다짐해 본다.
홍경석/ 작가. <두 번은 아파 봐야 인생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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