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불편한 사회현상에 자괴감이 밀려온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은 고사하고 해악만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쓰레기만 남기는 것은 아닐까? 알량한 식견으로 너무 오만방자한 것은 아닐까?
사람이 어찌 모든 천지자연을 만날 수 있으랴? 마을 뒷동산도 다 알기 어렵다. 그 무궁무진함만 알 뿐이다. 알거나 모르거나 자연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모든 것을 베푼다. 그 앞에 겸허해야하는 까닭이요, 삶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인문은 김홍도(金弘道)와 동갑내기로 같은 화원이었다.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으나 서로 쌍벽을 이룬 화가이다.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도 교류하였다. 다방면으로 재능이 뛰어났으며, 남종화와 북종화 기법을 섞어 사용, 독특한 화풍을 이루었다. 상대적으로, 당대 유행하던 진경산수 및 풍속화보다 전통적 소재를 더 많이 다루었다. 몹시 뒤틀린 소나무, 솟아오른 나뭇가지, 각진 바위가 특징이다.
그림의 처음부터 끝까지 강물이 도도히 흐른다. 강물이 보이지 않으면 폭포나 계류가 여지없이 등장한다. 보기에 오른쪽부터 감상해 나가자. 처음엔 자욱한 안개로 시작한다. 언덕 너머 강물이 흐르고, 강 건너 안개 속에 마을이 있다. 이층 이상 누각이 즐비한 것으로 보아 성안인 모양이다. 산세도 변화무쌍하다. 기암괴석 지대를 지나 만학천봉이 나타나고, 다시 부드러운 토산이 평야지대로 이어짐을 암시하며 안개처리로 끝난다. 소나무를 즐겨 그린 이인문 아닌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나무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산 구비마다 마을이 등장하고 각양각색의 사람이 오가거나 일하고 있다. 인물이 작아 분명하게 알아보기 어렵지만, 갖가지 생활상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저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엄청나게 큰 강물위에 수많은 배가 분주하게 오간다. 어선, 유람선, 여객선의 구분일까? 각기 다른 배가 많이도 떠돈다. 여러 형태의 교각과 성곽, 잔도도 보인다.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사는 모든 행태와 모습을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마음을 읽어 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파노라마로 찍은 사진 같은 느낌이요, 화제처럼 끝이 없는 강산의 모습이다.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 웅장함에 압도된다.
세로 44.1cm, 가로 856cm의 비단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린 두루마리 그림이다. 보물 제2029호이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제작연대가 밝혀진 그의 대부분 작품과 달리 관서가 없어 제작시기를 알 수 없다. 세련된 화법과 구성으로 보아 그의 후기작으로 짐작할 뿐이다.
1707년생인 심사정의 그림 <촉잔도권>이 참고가 되었을까? 그와 다소 닮은 측면도 있다. 붉은색과 연두색 등 더 많은 채색이 사용되어 화사하고 활기가 넘친다. 세어보기라도 한 것일까 350명 이상의 사람이 등장한다고 한다. 갖가지 생활상이 섬세하게 묘사된 것도 다르다. 세로는 85cm인 <촉잔도권>의 절반정도지만 가로는 38cm가 더 길어 조선후기 최대 작 중 하나로 꼽힌다. 그림의 좌우에 '추사(秋史)'와 '추사진장(秋史珍藏)'이라 새겨진 수장인(收藏印)이 찍혀 있어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소장하였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미적 쾌감을 느끼고 즐긴다. 예술품에 담긴 자연도 그중 하나다. 자연의 섭리, 조화와 상생, 이상세계를 누워서 즐기려(臥遊) 벽에 걸어둔다. 수시로 꺼내 보려 기꺼이 소장하기도 한다. 때로는 교훈이나 본보기로 삼는다. 어쩌면 이인문은 <강산무진도>에서 중국 북송의 화가 곽희(郭熙)가 말한 '머물며 노닐고 싶고, 살고 싶은 곳'의 산수를 그리려 한 것 아닐까?
누구나 머물며 노닐고 싶고, 살고 싶은 곳이 있으리라. 나라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살고 싶은 나라,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나랏일 하는 사람은 늘 각성해야 한다.
양동길/시인,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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