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우 회장 |
이곳 산 정상에는 삼국시대의 산성인 푸른 이끼가 낀 고성이 자리 잡고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대전시의 기념물 11호인 능성이다. 원도심의 축에 자리한 만큼 이곳에 서면 식장산과 보문산 계족산으로 둘러싸인 대전 분지가 보이고 멀리 계룡산까지 한눈에 다 들어와 대전 도심을 조망하기에 최고의 장소이다. 그래서 능성이 있는 산봉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 됐고 새해 첫날 해맞이 단골 장소로도 이용됐다.
20년 전 대전시청 시정 게시판에 누군가 능성 성벽의 돌을 뽑아 산성을 훼손한 것에 대한 민원을 넣었다. 그래서 당시 시 담당자가 현장을 직접 찾아 문화재인 산성의 훼손 현장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 후 20년이 지난 현재 능성의 훼손 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좁은 산성 안에는 체력단련 운동기구와 물품을 보관하기 위한 사물함 등으로 산성 전체가 야외 헬스장을 방불케 한다. 세월이 지난 만큼 문화재 훼손의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됐다. 전망이 좋은 장소에서 운동하겠다는 일부 등산객의 이기심과 이를 알고도 방치한 관계기관의 안일함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다. 능성은 성의 구조 중 성벽에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물리칠 수 있는 시설인 치의 형태가 가장 잘 남아 있는 산성이기도 하다.
흔히들 대전은 '산성의 도시'라는 말을 한다. 도심에 3대 하천과 금강이 흐르고 있어 인근에 고도인 공주와 부여로 통하는 교통로가 발달한 곳이다. 그리하여 삼국시대에 이곳을 중심으로 치열한 국가 간 대치가 이루어졌던 곳이었다. 대전시에는 약 50개 정도의 산성이 분포돼 있으니 대전이 '산성의 도시'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닌 듯하다.
이러한 산성으로 인해 일찍이 대전 산성에 관한 연구는 전국의 어느 지역보다도 활발했었다. 충남대학교에서 학술연구와 시민 단체 등의 산성 답사 등이 활발하게 이뤄졌었다. 1993년 대전에서 개최된 세계 Expo 때 대전관의 입구에 대전 계족산성의 이미지를 전시하기도 했었다. 대전은 국가 사적인 계족산성과 우리 지역 최초로 복원된 백제계 산성인 보문산성을 비롯해 20여 개의 산성이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2008년부터 수년간 지역의 향토사모임인 ‘옛.생.돌.모임’과 대전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공동으로 산성의 도시 대전 시민들을 위한 산성 트레킹,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산성 캠프, 산성 보호를 위한 대전 산성 성주 모집 행사와 더불어 문화재청 ‘생생문화재’ 사업인 대전 산성 축제 등을 개최해 시민들의 상당한 호응을 얻은 바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전의 문화재인 산성들은 잘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둘레산길이나 무분별한 등산로 개발과 시민들의 산성 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족이 원인이다. 성안에는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무연고 묘나 불법 종교시설, 곳곳에 설치된 체력단련시설, 둘레 산길이 산성을 통과하고 일부 등산객들은 성돌을 빼내어 돌탑을 축조하는 등 그 훼손의 정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산성은 우리 땅을 지키려 했던 조상들의 피와 땀이 어린 지킴의 역사 현장이다. 천여 년을 그곳에서 자리한 산성을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사명과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산성의 도시 대전은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전국 최초의 산성박물관을 건립한 인천 계양구나, 한강 변 워커힐 뒤편 서울 광진구의 아차산성과 고구려 보루 유적 주변의 등산로 정비와 활용 등의 선례를 보면서 '산성의 도시' 대전이 산성의 보존과 활용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다.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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