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래 청장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신임 임원들과의 대화에서 경직된 조직에 대한 자성과 함께 분발을 촉구하는 발언을 접하고 단체장으로서 공감하는 바가 컸다.
그가 강조한 '다양성'과 '디커플링'에 눈길이 갔다. 신임 임원중 여성 비율이 7%에 그친 데다 모두 한국인이란 점을 지적한 것이다. "글로벌 기업은 다양성을 존중한다"며 "신임임원 스스로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원동력은 조직의 다양성에서 나온다는 경영철학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탈동조화(脫同調化)라 일컫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준비된 극적 반전'으로 편하게 이해하고자 한다. 세계는 미국의 불·호황에 따라 한살림공동체처럼 울고 웃는다. 미국과 동고동락하는 경제 상황을 '커플링'이라 하는데 '디커플링'은 반대 현상이다. 세계 경제는 미국의 영향을 받는 커플링의 연속이었지만 21세기 들어 디커플링이라는 반전이 나타나곤 한다.
대표적으로 2000년대 초반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위기를 겪었는데도 신흥경제국인 브릭스(BRICS)는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요즘은 중국과 미국의 패권 다툼에 세계 경제가 혼탁한 국면으로 진입하자 많은 나라가 강대국의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블루오션을 창출하기 위해 조직정비와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침 친환경·저탄소 정책이 새로운 경제 질서와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다양성과 창의력을 갖춘 조직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최선의 카드로 꼽힌다.
우리 행정 분야도 조직의 다양성을 수혈할 필요가 있다. 기초지자체가 짜임새 있는 조직력을 갖춘다면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의 통제나 위기 상황에도 디커플링을 향해 총매진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이 바뀌긴 했지만, 공직사회에는 아직 다양성을 저해하는 구태가 남아있다.
각 지자체는 시민 눈높이에 맞춰 일부 자리를 전문성을 갖춘 임기제로 채우고 있다. 효과가 좋아 임기제 채용 폭을 확대하는 추세지만 기존 조직과의 융화가 문제다. 재계약을 볼모로 한 창의·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는 임용취지를 무색하게 할 뿐만 아니라 조직의 분란만 초래할 것이다.
직장 내 갑질·괴롭힘 논란도 걸림돌이다. 지방공무원법 제49조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명시하면서 하위직에 '복종의 의무'를 강요한다. 이는 갑질 근절대책과 상충돼 논쟁의 여지가 많지만 다양성과 창의성을 추구하는 조직에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유성구의 경우 지난달 3일간에 걸친 구정 업무보고회에 기존 팀장급 이상만 참석하던 전례를 깨고 하위직 서무들도 자리하도록 했다. 업무 공유와 자존감 고취를 위해서다. 이 자리서 유성구청으로서 "유성구는 5년 차 이하 신규직원 비율이 30~40%인데 윗사람들의 불성실함을 배우면 조직개선이 어렵다"고 지적하고 상호 격려와 배려를 주문했다. 하위직이 도맡는 불필요한 보고문서 작성을 자제하도록 '업무 다이어트'도 지시했다.
상황에 따라 잘 짜인 시나리오에 대처할 줄 아는 조직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반대로 꼰대·갑질 시비와 상호불신에 매몰된 조직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최근 유성구는 각종 평가에서 최상위 실적을 올릴 정도로 강한 조직력을 갖췄지만 좀 더 활기차고 다양성을 갖춘 조직문화를 위해 개선할 점은 없는지 구성원과 함께 성찰하고자 한다. 힘겨운 나라 경제에도 불구하고 공직자들이 앞장서 상호 존중의 정신으로 협업하고 다양성을 확보한다면 대한민국 경쟁력은 한층 강화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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