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진보와 보수의 이면(裏面)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진보와 보수의 이면(裏面)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 승인 2023-02-27 08:29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송복섭 교수
요즘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사회가 시끄럽다. 사전을 찾아보니 '기존 체제에 대항하면서 개혁을 통해 새롭게 바꾸려는 성향'을 진보라 칭하고, '전통 가치와 안정을 지향'하는 것이 보수라고 말한다. 둘 다 좋은 말인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일까? 정의는 제대로 되어있으나 결국 전제가 빠졌다. 바꿔야 하는 기존 체제가 문제라는 인식과 불온한 변화로부터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생략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서로 상대를 탓하고 적으로 단정해 갈등과 싸움이 난무한 세상이 됐다.

하긴 어느 시댄들 조용한 날이 있었겠는가? 조선시대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고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하며 패를 지어 싸우다가 급기야는 서로를 죽이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해방 후에도 좌와 우로 나뉘어 대립하다가 결국 동족상잔의 비극과 함께 남과 북으로 갈리는 역사를 만들었다.

현대사는 어떤가?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 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군인들이 5·16쿠데타를 일으켰고, 다시 시간이 흘러 독재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며 10·26을 감행했다. 무도한 반란세력을 척결하겠다고 12·12군사반란을 일으킨 세력은 곧이어 '일부 정치인, 학생 및 근로자들이 사회를 혼란과 무질서, 선동과 파괴가 난무하는 무법지대로 만들고 있다'며 5·17 내란을 일으켰다. 주장만을 따르자면 모두 이유 있는 행동이었지만 역사는 그렇게 평가하지 않고 이면(裏面)을 파헤친다.

역사를 바꾼 영웅으로 꼽히는 율리우스 시저를 살펴보자.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의 실질적 지배자가 된 시저는 무기력하고 혼란만 일삼는 원로원을 제치고 시민들의 인기를 힘입어 10년의 기간을 정해 스스로 ‘독재관’(獨裁官)에 취임했다. 현재 달력의 근간이 되는 역법 개정을 비롯해 인프라 확충과 이자율 제한, 시민복지 향상 등 시민의 편에서 각종 개혁과제를 일사불란하게 추진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원로원에 대항해 개혁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선 일정 정도 독재가 필요하다는 논리였고, 이를 시민이 인정해준 것이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가 시저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 케사리온을 데리고 로마에 나타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친아들이 없었던 시저가 후계자를 외조카뻘 옥타비아누스로 정해둔 상태이긴 했지만 새로 생긴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줄 욕심이 생겼을 것으로 추정한다. 연인의 아들로 시저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브루투스도 케사리온의 등장과 함께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라 호사가들은 얘기한다. 결국, 독재자를 타도하고 공화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원로원 의원들이 시저를 죽이는 과정에서 브루투스가 깊이 관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암살 직후 원로원 의원들이 광장으로 나가 "로마 사람들이여, 우리는 다시 자유로워졌다!"라고 외쳤지만, 시민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가담한 의원들이 제거됨과 동시에 거사의 명분이 된 로마 공화정이 망하고 황제가 통치하는 제정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여기서 의문을 가져봄 직하다. 원로원 의원들은 시민의 대의기관이 국가를 운영하는 공화정체제를 지키기 위해 독재자를 타도한다는 정의로운 의도만 있었을까? 시저는 당면한 개혁과제를 모두 완성하고 10년 뒤 독재관의 자리에서 깨끗이 물러났을까? 철학자이자 선정을 베푼 현제(賢帝)로 추앙받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유능한 인물을 양자로 입양해 제위를 물려주던 로마의 전통을 버리고 친아들 코모두스가 승계해 로마제국 사상 최악의 황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선거가 가까울수록 진보와 보수는 또다시 치열하게 격돌한다. 각자가 하는 주장들을 들어보면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이면은 말을 하지 않아도 다 보인다. 최근 지역에서 국립대 통합 논란이 뜨겁다. '두 대학이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명분보다는, 대학이 큰 변혁을 요구받는 시기에 어려운 혁신 과제를 수행하기보다는, 거대조직이 주는 안전함에 기대어 좀 더 편한 생존의 길을 택하겠다는 이면은 없을까?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