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그 홍보의 일환으로 어딜 가느라 중앙로 목척교 근방의 모 패스트푸드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1번 직행버스로 환승하고자에서였다.
난방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앉으면 따뜻한 버스정류장 의자에 내 또래의 남자가 만취하여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런데 입성을 보니 남루하기 이를 게 없었다.
더욱 보기 민망했던 건 흰 바지 아래로 훤히 보이는 그 남자의 똥과 오줌 범벅이었다. 절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대체 무슨 곡절로 이 추운 겨울에 안온한 집을 나와 저기서 저러고 있을까….
최근 이런 기사를 모 신문에서 봤다.
= "저는 70대 노인입니다. 남편과 사별한 후 아들과 둘이 살고 있어요. 그런데 아들은 언제부터인가 화를 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저를 향해 욕설까지 하더군요. 심지어 아들이 던진 물건에 맞아 얼굴과 팔까지 멍이 들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얘길 했더니 '노인학대'라며 신고를 하라더군요. 하지만 그러면 세상에 하나 있는 아들이 범죄자로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그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우리나라는 이미 심각한 고령화사회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노인과 어르신들의 사회적 지위는 낮아지고 부정적 인식은 반대로 높아지고 있다. 세대 간의 갈등 또한 심화되고 있음을 쉬이 발견하게 된다.
노인학대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친족에 의한 노인학대 건수가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중론(衆論)이다.
그럼에도 쉬쉬하는 건 내 가족이 주변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할까봐, 혹은 법의 처벌을 받으면 어쩌나 싶은 조바심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처럼 자녀가 부모를 학대함에도 불구하고 참기만 하다가는 그 피해는 더욱 가중된다는 데 있다.
노인학대 신고자의 신분은 노인복지법 제39조6 제3항에 의거해 비밀이 보장된다고 한다. 노인학대의 유형은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적(性的) 학대, 경제적 학대 뿐 아니라 유기(遺棄)와 방임(放任)도 있다.
노인학대는 가정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범죄라는 인식이 필요한 즈음이다. 노인학대가 발생하는 경우, 노인보호전문기관이나 경찰서 또는 국번 없이 전화 1577-1389로 하면 된다.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인이었던 송강 정철(鄭澈)은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날 주오 /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 늙기도 설워라커늘 짐을 조차 지실까』라며 사람이 늙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을 시조를 통해 담아냈다.
사적 영역이지만 이번에 발간한 나의 다섯 번째 저서는 그동안 발간한 네 권과 달리 출간 전에 처음으로 딸에게 수정과 교정 작업을 부탁했다. 그래서 출간의 어려움을 새삼 인식한 딸은 책이 나오기도 전부터 10권의 선주문(先注文)을 하기까지 했다.
"글 잘 쓰시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라면서 아들 역시 '노인'인 나를 우대한다. 주변에서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으며 책까지 낼 수 있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불변하다.
"책을 많이 읽으면 자연스레 글이 써지고 종당엔 책까지 내게 됩니다." 그 말에 첨언하자면 책을 낼 정도가 되면 가족으로부터도 노인학대는커녕 존경까지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드는 노파심인데 어제 버스정류장에서 본 그 남자의 추레한 모습은 혹시 노인학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는 물론 작가의 어떤 아전인수(我田引水) 당위성 주장이다.
홍경석/ 작가. <두 번은 아파 봐야 인생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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