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전체를 놓고 보면 시작부터 아리송하다. 어떤 의지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인 무심(無心)의 상태다. 그냥 살아진 것이다. 의식이 생기면서 의지가 만들어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의식은 다 채워지지 않는다.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무심도 끝이 없다. 모두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양극을 지향한다. 끝을 보고자 한다. 오히려 멈출 줄 아는 지혜가 있는 것이 우리 같은 필부 아닐까?
죽음도 일종의 멈춤이다. 언젠가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더러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떵떵대기도 한다. 의식하지 못하고 멈추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화담 서경덕같이 화담에 목욕하고 돌아와 세상과 하직하기도 한다. 퇴계 이황은 매화분에 물 주게 하고 침상까지 정돈시킨 후 단정히 앉아 역책(易?: 학덕이 높은 사람의 죽음)하였다.
어느 시인의 부음이 들렸다. 전혀 몰랐다고 하자, 운명하기 일주일 전 주변 정리하고 필요한 유언을 남겼는데, 그 속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다 한다.
주변 정리, 어느 것이 좋을까? 작가는 작품으로 준비한다. 멈추기 전에 남긴, 마감 작품이 전한다. 딱히 그렇다는 설명이야 없지만 무척 공 들였음은 알 수 있다. 김홍도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성부도(秋聲賦圖)>를 소개한 바 있다.
그림은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그림 <촉잔도권(蜀棧圖卷)> 부분이다. 이 역시 심사정이 생명활동을 멈추기 1년 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이다. 높이 0.85m, 길이8.18m에 이르는 장폭 두루마리 그림이다. 그의 모든 필치가 담겨있어 '심사정의 회화 이력서'라 일컬어진다. 전시가 어려운 탓이겠지만, 탁상위에 펼쳐 놓아 한눈에 보기 어렵다.
더욱 실감나게 감상하기 위해 '촉잔도' 관련 동영상을 찾아본다. 잔도(棧道)는 길이 생길 수 없는 곳에 인위적으로 만든 길이다. 절벽에 구멍을 파고, 구멍에 받침대를 꽂는다. 받침대 위에 널판을 깔아 사람이 다닐 수 있게 한 것이다. 말이 간단치, 공사 난이도가 대단히 높다. 최초의 잔도는 친링산맥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그것도 장비가 변변치 않은 전국 시대(기원전 476년 ~ 기원전 221년) 만들었다하니 놀랍지 아니한가?
촉잔도(蜀棧道)는 촉과 중원을 잇는 길이다. 삼국지나 초한지에 등장하여 더욱 유명하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북벌에 사용한다. "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이여, 하늘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렵구나." 이태백이 '촉도난(蜀道難)'란 시에서 읊조렸을 정도로 매우 험준한 외길이다.
유비 삼형제가 죽은 후 홀로 남은 제갈량, 국력이 약함은 문론 적은 군사로 대업을 이루기가 난감했다. 그렇다고 놔두면 근심거리가 커지니 정벌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역적 위와 양립할 수 없다. 선황 유비의 뜻이기도 하다. 여섯 번이나 북벌에 나선다. 선황의 명을 받은 이래 잠을 자도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으며,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한다. 위험과 고난을 무릅쓰고 북벌에 나선다. 유비와 조조가 얻은 위업도 각종 고초, 여러 번의 패배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룬 것이다. 도태되어 잃어버리는 것 보다 싸워 보는 것이 더 낫다. 선제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 중국인들이 3대 명문이라 자랑하는 제갈량의 '후출사표'의 요약이다. 재상을 설득하고, 황제 유선에게 출병 허락을 받기 위해 쓴 글이다. 마지막은 이렇게 정리한다. "신은 삼가 몸을 굽히고 온 힘을 다하여 죽은 뒤에야 그만 둘 것이니, 성공과 실패, 이익과 손해는 신의 지혜로 예측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臣鞠躬盡力 死而後已 至於成敗利鈍 非臣之明所能逆竟睹也.)"
그렇다 사람은 건전한 의지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험준한 인생길,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盡人事而待天命)
양동길/시인,수필가
양동길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