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
지난 3년간은 우리 세대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 19의 시대였다. 대학 시절 분자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PCR'이라는 줄임말을 전 국민이 알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격변의 시대에 과학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과학을 뺀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장거리 운행이 가능한 전기자동차와 부작용 없고 뛰어난 효능의 신약, 인간의 영역에 스며드는 인공지능과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로봇 등 과학이 적용된 신기술은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자동차의 구조나 작동원리를 이해하지 못해도 운전을 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매일 먹는 영양제나 약의 화학적 구조를 몰라도 효과를 본다. 하지만 만약 과학이 쉽게 설명되지 않고 제한된 영역에서만 이야기된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자. 과학에 대중의 흥미가 없어지면 발전이 더디게 될 것이며 과학자가 되려는 꿈을 꾸는 아이들이 적어질 것이다. 과학 발전에 의해 윤리와 가치관이 훼손되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과학발전에 투자되는 예산도 줄어들 것이다.
대중이 과학에 관심갖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보면, 당장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니 별일 없어 보이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내용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몇 가지 제안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대중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제목을 고민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분야를 다른 사람도 쉽게 이해하고 재미 있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필자가 '임피던스를 이용한 삼차원 배양세포의 독성평가'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고 하자. 아마 아무도 읽지 않은 조회수 0의 글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제목을 '뭐! 세포에서 인바디 측정을 한다고?'라면 어떨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전자에 작성한 제목의 칼럼보다 조회수가 올라갈 것이다. 제목만으로 주제에 대한 흥미를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적당한 비유를 찾아야 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한 비유를 통해 쉽게 전했다. 우리는 각자 배움의 정도와 삶의 경험의 차이가 있어 공감의 정도가 다르다. 우리는 일상에서 공감과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사자성어나 속담을 사용한다. 매운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 어떤 라면의 맵기를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위에 언급한 '인바디 측정'이라는 비유는 임피던스라는 용어를 몰라도 공감도를 높일 수 있다.
세 번째로 적절하고 쉬운 말을 골라야 한다. 필자가 대학 시절에 배운 과학용어는 대부분이 라틴어를 일본식 한자로 바꾸어 사용했다. 쉬운 이해를 위해 일본식 한자 유래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고 있지만, 아직도 완벽하지 않다. 은연중에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과학자들 간의 전문용어를 통한 소통은 정확하게 의도한 바를 전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쉽고 전달력 있는 단어 선택은 필수적이다. 정부도 어려운 과학/의학용어를 쉽게 바꾸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예, 심장제세동기→자동심장충격기).
마지막으로 자기 글에 도취되지 말아야 한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쉽게 과학을 글로 설명한다 해도 여전히 대중에게는 어려운 영역이다. 과학자들이 종종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자아도취다. 자신에게는 아무리 쉬운 글이라도 대중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영역일 수 있다. 다듬고 다듬어서 쉽고 전달력 있는 글을 써야 한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마실 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과학에 대한 갈증을 해결할 시원한 생수를 제공하고 진입장벽이 낮춘다면 응원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며 과학발전에 뛰어들 후속세대도 늘어날 것이다.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