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
출장 목적으로 일본을 여러 차례 갔었지만, 관광을 위해서는 딱 두 번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한 번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느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문화관광에 동참했었지요. 방문지는 동경이고 그곳의 공연장,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보고 온 적이 있습니다. 또 한 번은 순수하게 자의로 위에서 얘기한 '설국'이라는 소설을 읽고 눈 지방의 전경을 보기 위해서 '설국'의 구체적 배경인 니가타(新瀉)현 옆에 있는 아오모리(靑森)현을 찾았지요.
사실 눈 덮인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시적인 문체로 눈 내리는 마을을 묘사한 것이 더욱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래도 '설국'의 실제 배경 마을인 니가타현과 조금 떨어져 있지만 니가타 못지않게 눈의 고장으로 유명한 아오모리를 방문했는데, 아오모리(靑林)는 '푸른 숲'이라는 뜻입니다. 아오모리라는 도시를 건설할 때 그 자리에 푸른 나무가 유난히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일본 전역에서 생산되는 사과의 50퍼센트가 아오모리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사과하면 아오모리고 아오모리 하면 사과라는 등식이 상식으로 통한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아오모리에서는 사과와 관련한 다양한 상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각가지 품종의 사과로 만든 주스, 사과파이, 사과잼, 사과 푸딩, 사과 케이크, 말린 사과 과자, 사과를 재료로 만든 비누까지 각양각색의 상품들이 상점마다 즐비합니다.
그러나 아오모리는 사과라는 상품을 뛰어넘어 눈 덮인 자연과 유한한 인간의 존재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상징의 세계 그 자체입니다. 나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내가 본 그 눈은 변함없이 그대로이니 나라는 존재를 자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당시 아오모리의 눈 덮인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보고 그 느낌을 메모한 빛바랜 노트를 꺼내서 그때의 설경을 소환해보았습니다.
"아오모리는 눈들이 사이좋게 모여 사는 곳입니다.
지붕도 눈으로 씌우고 나무마다 눈꽃(雪花)이 핍니다.
눈들끼리 살가운 대화도 나눕니다.
멀리 눈산(雪山) 아래 평야(雪野)가 펼쳐지고, 눈밭(雪田)에는 눈 풀(雪草)이 자라고, 온갖 도로 양편에는 눈 보초(雪哨)가 지키고 있습니다.
어느새 눈 하늘(雪天)이 되어 눈 자동차(雪車)도 만들고 눈사람(雪人)으로 분장시키기도 합니다.
아오모리는 눈이 삶이고 눈이 주인인 곳입니다. 눈이 우리에게 하얗게 하얗게 인사를 합니다.
여러분이 행복하니까 우리도 행복하네요."
눈과 관련해서는 삿포로시의 눈축제가 유명하지요. 매년 2월 5일부터 일주일간 삿포로에서는 세계 3대 축제가 열리며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지요. 2010년 삿포로와 대전은 자매결연을 체결한 이래 매년 시민대표단이 방문하고 삿포로에서도 대전의 축제에 삿포로 시민들이 방문하는 등 교류가 활발합니다. 삿포로 눈축제에는 눈으로 만든 각종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세계에서 모여든 관람객을 매료시킵니다.
눈에는 윤동주의 시도 빼놓을 수 없지요.
"지난밤에 / 눈이 소오복이 왔네 / 지붕이랑 / 길이랑 밭이랑 / 추워한다고 /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 그러기에 /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 우리가 눈발이라면"
오늘, 우수 전전날 설국, 아오모리, 삿포로 눈축제, 윤동주 시인까지 연달아 불러내니 마음속까지 깨끗하고 상쾌함을 느낍니다.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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