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린아 변호사 |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얼싸안고 포옹하며 기쁨을 만끽했는데, 손흥민은 벤투 감독의 이마에 입을 맞췄고, 황희찬은 손흥민과 포옹하며 손흥민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그 순간 직업병이 발동… '앗, 동성 사이에도 이마에 키스를 하거나 엉덩이를 두드리는 건 추행이 될 수도 있는데….' 물론 동고동락하며 한 몸처럼 함께 월드컵 경기를 준비해온 우리 대표팀 감독, 선수들 간에 그 정도의 스킨십은 칭찬과 격려의 의미로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것이었겠지만. 만약 비슷한 상황이더라도 상대방이 평균적인 경우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다면 양해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기에.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이 있다. 도덕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서 내면적·자율적 규범이고, 그중 최소한으로 꼭 지켜져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만 법이라는 외적·강제적 규범을 통해 규율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법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즉 국민의 일반적인 관념이나 법 감정의 변화에 따라 서서히 바뀌어 왔다.
최근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른 법의 변화(제·개정) 또는 법 적용의 변화(신고비율, 처벌수위)가 도드라지는 범죄 중 대표적인 것이 성범죄, 그중에서도 강제추행죄가 아닌가 한다.
과거에는 동성 간은 물론 이성 간에도 강제추행에 대해 굉장히 관대한 분위기였다. 1970~1980년대에 직장생활을 하셨던 필자의 어머니는 회사에서 남자 직원이 여자 직원의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거나 엉덩이를 건드리는 등의 추행이 흔하게 있었다고 하셨고, 1980년대 후반 또는 1990년대에 학교를 다닌 필자 포함 주변 사람들을 보더라도 학교에서 남자 선생님이 여학생들의 귓불을 주무르거나, 남자 선생님이 남학생들의 성기를 만지는 등의 추행을 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제추행을 비롯한 성범죄에 대해 응당 범죄임에도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반면, 요즘은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성인지 감수성',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용어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해졌을 정도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만한 행위였는지 여부에 따라 유무죄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때로는 가해자에게 성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보이거나 심하지 않은 정도의 신체 접촉에 피해자가 (평균적인 경우보다)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정도의 사안에서도 유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꼭 남성이 가해자이고 여성이 피해자인 것도 아니다. 비율은 낮지만 여성이 가해자, 남성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고, 동성 간의 신체 접촉에 대해 강제추행이 문제 되는 경우도 많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가해자들은 "성적인 의도가 없었다. 그저 친밀감의 표시였다"는 등으로 항변하지만, 이성이든 동성이든 객관적으로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있었고 상대방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강제추행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법원은 강제추행죄에 대해 "추행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이에 해당 하는지 여부는 피해자의 의사, 성별,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 태양, 주위의 객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히 결정되어야 한다", "강제추행죄의 성립에 필요한 주관적 구성요건으로 성욕을 자극, 흥분, 만족 시키려는 주관적 동기나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옛날을 생각하며 '내 기준'에 따라 상대방에게 친밀감을 표시하다가는 강제추행죄의 피의자·피고인이 될 수 있고, '나의 억울함'을 알아주는 검사·판사님이 있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시대이니, 매사에 행동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정바름 기자 niya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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