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교수 |
서른이 넘어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유학했던 나는 일곱 번의 졸업식을 경험했다. 두 번은 내 자신의 졸업식이었고 다른 다섯 번은 선후배들의 졸업을 축하하러 간 자리였다. 매번 느꼈던 것이지만 미국 대학교 졸업식은 학부 졸업생조차 부모님들과 함께 자랑스러움을 주체 못하며 기쁨을 표출하는 축제의 자리였다.
미국 대학교 졸업식은 성대하게 치러진다. 대학원생들은 미리 옆 건물에서 대기하면서 먼저 학부생들이 식장으로 들어가 착석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우리가 차례로 식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빠암~ 빠바밤 빠암빰~!" 경쾌하게 울리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의 연주를 들으면서 석사 졸업생들이 식장의 입구에 두 줄로 섰고 박사 졸업생들이 그 앞에 두 줄로 도열했다.
마지막으로 형형색색의 멋진 가운을 입은 교수들이 석박사 졸업생들 사이를 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교기와 더불어 총장, 또는 학장이 입장하면 그 뒤를 따라서 박사들이 따라가고 그 뒤를 석사들이 들어갔다. 미국 대학교의 졸업식은 자유로움 속에서 엄정한 질서가 있었다. 특히 학생들이 졸업식에 임하는 진중한 태도에서 교수님들에 대한 예의 표시가 눈에 두드러졌다. 그때마다 내 가슴 속에는 뜨거운 것이 뭉클하게 올라왔다.
미국의 대학교 졸업식에서 나는 학생들의 자부심을 보았다. 그것은 공부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미국 대학 교육과정과 평가시스템을 모두 견뎌내고 새로운 시작(졸업식의 영어표현은 'The Commencement'이고 '시작'이라는 의미임)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찬사였다. 그리고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자신을 가르치고 이끌어준 스승에 대한 제자의 존경심이 드러났다. 제자들은 진심을 담아 스승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자부심과 존경심이 감사로 드러나는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미국은 자유분방한 나라이고 형식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감동적인 졸업식 모습을 볼 수 없을까?" 이 질문을 계기로 다시 한번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예전에는 군사부일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이는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다'라는 의미다. 그 권위가 동일한 것이 아니라 그 은혜가 동일하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예전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격언이 있었다. 그 정도로 스승을 존경하고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어느새 이런 말들을 하게 되면 꼰대가 되거나 옛 추억팔이나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교권의 추락과 더불어 가르침을 주신 스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 사라졌다. 교사와 교수는 지식 전달자가 되어 버린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심지어 인공지능의 발달로 교사와 교수라는 직업은 사라질 직업목록 상위권에 올라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식은땀이 난다.
그렇지만 그 누가 인공지능 스승에게 감사와 존경을 드리겠는가? 우리는 인간이다. 학교에서 지식만 배운 것 같지만, 선생님에게 배운 것은 지식과 더불어 그분의 인격과 감사와 존경의 마음가짐과 태도였다. 그리고 사회의 규범과 예의범절을 배웠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한다면 인공지능이 인간 교사나 교수보다 훨씬 낫다.
이제 졸업식이 다가온다. 졸업생과 학부모님께 올해는 졸업식장에 들어가 보길 권한다. 대학교의 수준 높은 교육과정과 평가 시스템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애쓰고 힘쓴 나 자신, 또는 내 자녀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칭찬해주자. 그리고 나를 가르쳐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셨던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보면 어떨까? 내가 스승님께 보낸 감사의 말과 태도는 도로 제자인 내게 돌아와 나의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 줄 것이다.
/김정태 배재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