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윤봉길의사와 도시락 폭탄
3. 크리스마스 예수 탄신일
4. 의자왕과 삼천 궁녀
5. 그래도 지구는 돈다
6. 내 죽음을 <적에게 > 알리지 말라
7. 뉴튼과 사과
위에 있는 7가지의 사례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거짓 뉴스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사실처럼 믿어왔다는 것이다. 이런 가짜뉴스들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고조선 때도 고려시대에도 역사상 부모를 갖다 버린 막장시대는 없었다. 최고의 미덕이 효인 우리나라에선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늙은 부모를 갖다 버린다는 이 기이한 발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평생을 자식을 위해 헌신하다 쪼그라들 대로 줄어든 마른 참새 같은 노모를 지게에 지고 가는 모습은 인간이 굶어 죽을지언정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부에서 효를 중심으로 살아온 우리를 선동질하기 위해 만든 민담에서 나온 이야기가 와전된 것이다.
1931년 중국에서 채소 장사를 하던 젊은 윤봉길 의사는 김구를 찾아간다. 자신의 생명을 나라를 위해 바치겠다는 맹세를 한다. 그는 일본 천황의 생일에 훙커우공원에 폭탄 투척을 실행한다. 윤봉길은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등을 처단했다.
그가 던진 건 사실 도시락 폭탄이 아니라 물통폭탄이었다. 이제라도 제대로 알게 돼서 다행이다. 훙커우 공원에서 윤의사가 물통 폭탄을 던지는 모습은 2미터가 넘는 전설의 투수 랜디 존슨이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모습보다 더 처연하고 멋지다. (삶이란 어쩌면 새의 입장에선 어떤 누구의 의도도 아닌 그냥 운명인 것이다. ) 이제라도 나의 무지함이 날아오는 공에 깨어지는 느낌이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생일이 아니다. 그 어느 누구도 예수의 탄신일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정치는 종교를 필요로 한다. 4세기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지정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승인하면서 정해진 날이었다. 당시 미트라교를 믿는 사람들이 로마엔 훨씬 더 많았다.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 미트라교 교주의 생일을 금니 씌우듯 예수탄신일로 덮어 버린 것이다. 미트라교는 참고로 태양의 신이다.
의자왕은 무왕의 장자로 《삼국유사》 <서동요> 설화의 기록을 따른다면 신라 선덕여왕의 조카이자 태종 무열왕의 이종사촌이다. 왕은 천성이 용감하고 인품이 훌륭했다. 그의 방탕함이나 무능함으로 백제가 무너진 게 아니었다. 나당 연합군아래 국론분열로 망할 수밖에 없었던 비련의 역사일 뿐이다.
의자왕은 용감하고 전술에 뛰어난 왕이었다. 당시 3천 명의 궁녀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는 마지막까지 싸우다 전사한 위대한 백제의 왕이었다. 명석하고 뛰어난 그는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41~660년이며 무왕의 맏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들과도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고 불렸다. 1300년 만에 억울함이 풀렸으나 그의 설움은 영원히 떠돌 것이다. 역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종교재판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감옥에서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한 적은 없다. 70세의 현실적인 노인인 그는 위대한 과학자였고 실용주의자였다. 그는 부르노와 달리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다. 그 어떤 서류나 기록에도 그가 법원에서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뉴튼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떠 올리지 않았다. 1660년대 중반 20대 초반의 대학생 뉴턴은 흑사병 때문에 학교가 휴교를 해서 집에 머물렀다. 이 기간에 뉴턴은 정원에서 저녁식사 후 차를 마시다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왜 수직으로 떨어질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과로 인해 궁금증을 갖게 된 것은 맞지만 어떤 서류나 문서에도 그가 사과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증거는 없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낸 것은 그 후로 20년 이상 지난 시점이었고 뉴튼 자신이 사과나무를 보고 만유인력을 알아냈다고 말을 한 적은 없다. 그는 데카르트나 갈릴레오 다른 위대한 거인의 어깨에 기대어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말은 <내 죽음 알리지 말라>이다. 자신의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염려해서 남긴 말이다.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게 아니라 자신의 빈자리를 걱정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전쟁에 임하라는 충무공다운 말이었다.
위인전 속 이야기들이 절대적인 진실이었다고 믿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여름밤, 사랑채 들보 꼭대기 위, 거꾸로 매달려 저승사자처럼 대기하고 있었던 박쥐들이 날개를 퍼덕이던 시간! 그들의 오만한 소매자락은 꽉 닫혀있었지. 마치 빚쟁이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달려든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지난 시간 온갖 거짓 정보로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졌다. 누가 제발 좀 소리쳐줘. 정신줄 꽉 잡고 살라고! 갑자기 수만 마리의 박쥐가 날하늘을 검게 덮는다. 휘익 날아오른다. 손가락을 V자로 보여주면서! 무심코 누군가가 남기고 간 댓글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참고로 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 내가 이렇게 싸구려인데 세상은 잘 모르더라. 나팔꽃이 관음증이 있는지 자꾸 창을 타고 기어오르는 아침 난, 흉터를 없앨 수는 없지만 흐려지게 할 수는 있는 진리를 깨달았다.
세계 최고의 불가사의 중 하나인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과연 왕의 무덤이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확인하지 않는 한 아무도 진실을 알지 못한다. 평생을 알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거짓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역사란 아주 작은 실오라기에 논리적인 사고력과 흥미를 가진 인간들이 만든 윤색의 스토리일 뿐이다.
쿠푸왕의 파라미드
무언의 간청, 침묵의 호소는 묵살당하기 쉽다는 것을 삶으로부터 배웠다. 거리를 장악하고 거인의 똥꼬를 빠는 자만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2020년 코로나 확진자는 가해자이다. 지나간 그 시대 난 정말 가해자였을까? 피해자였을까? 사랑이 끝나고 난 후 엑셀파일로 계산서가 날아오지. 가까 뉴스가 난무하고 난 도륙이 났지. 일본도를 사야겠다.
2020년 10월 7일 코로나로 강제로 ㅊ대학병원에 끌려가있을 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몇 번을 망설이다 받았다. 보건소에서 내 허락 없이 기자들에게 전화번호를 넘긴 경우도 있었고 어느 용감한 시민이 내 전화번호랑 주소 이름을 인터넷에 마구 뿌렸다. (넌 잡히면 알쥐! 이미 누군지도 알고 있다.) 용기를 내서 받았다. 아! 난 정말 그분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살았던 아파트 라인 청소하시는 어르신이셨다.
"슨상님 참보고 싶었습니다. 지가 일자무식이지만 코로나가 아무것도 아니란 거 알고 있어요. 그거 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거니까 하나도 안 아프니까 걱정하나도 하지 마셔요. 까짓 거 감기보다 훨씬 더 약간거닝께 후딱 나으셔 유."
눈물이 났다. 전 국민이 욕하는데 유일하게 나를 격려해 주신 분이었다. 유명대학 교수들도 나와서 죽을 만큼 아프다는 둥 후유증이 심하다는 둥 떠들어대던 시절에 문자 메시지조차 할 줄 모르신다는 그분께서 어찌어찌 물어서 격려의 전화를 주셨다.
너무 고마워서 별다방 커피 기프트를 보내 드렸다.
"이런 거 안 주셔도 돼요. 저 이거 쓸 줄도 몰라요"하셨다. 그리고 "지난 10년 넘게 선생님께서 명절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선물 보내신 거 다 알고 있어요." 그분의 똑 부러진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넉넉함이 배어있었다. 그분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살아온 세월에서 묻어 나온 초월자의 대담함이 배어 있었다. 그분은 어떻게 알았을까?
수십 개 방송사들이 거짓 뉴스를 올리고 아파트 가득 채우고 소란을 피웠지만 그분만은 나를 위로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 그분께선 참말로 용기를 주셨다.
시대를 아울러 가르쳐주시는 어르신이 있어서 참 고마운 하루였다. 칭찬과 격려의 말이 아니라면 차라리 침묵해야 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별이 되어 빛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정온/수필가
정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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