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이슈현장] 서산 주민의 부석사 불상, 대마도에 넘길 것인가

[WHY이슈현장] 서산 주민의 부석사 불상, 대마도에 넘길 것인가

서산 부석사 불상 소송 Q&A

  • 승인 2023-02-09 17:05
  • 수정 2023-02-11 10:18
  • 신문게재 2023-02-10 10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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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충남 서산 주민들이 뜻을 모아 봉안한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상을 국내에 다시 봉안할 수 있을까? 법과 제도를 가진 국가에서 그것에 맞게 소유권을 결정하려는 노력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처음 봉안되었을 때부터 왜구의 약탈이 횡횡했을 전시를 거쳐 현재까지 700여 년의 역사가 불상에 함축되어 있다. 부석사 불상을 최초 제작한 32명의 시주자부터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복장물의 의미까지 김경임 전 튀니지 대사의 저서 '서산 부석사 관음상의 눈물'을 인용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Q.부석사 금동관음 불상이 무엇인가요?

-키 50.5㎝, 얼굴 길이 13.4㎝, 몸 두께 17.5㎝, 무릎의 폭 42.2㎝, 깊이 41.5㎝이고, 중생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듯 몸을 앞으로 약간 숙여 엷은 미소 띤 고려 때 불상입니다. 부석사 인근의 서산 가야산 절벽에 마애삼존불상의 미소가 '백제의 미소'로 불린다면 부석사 관음보살상의 미소는 고려의 미소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은은하고 고유합니다. 온몸에 많은 장식을 걸쳤어도 번잡한 느낌을 주지 않고, 오히려 장중하면서도 우아한 고려 후기 불상의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Q.불상에 1330년 충남 서산의 역사가 녹아있다고요?



-서산은 작은 마을이지만 물산은 다양했어요. 토산물로는 쌀을 비롯해 보리, 조, 기장, 메밀과 같은 여러 잡곡을 산출했고, 모시와 삼을 생산했죠. 해산물로는 굴, 낙지, 조기, 청어, 상어 등 서해상의 기름지고 풍부한 어류를 거뒀을 뿐 아니라, 조정에 진상했던 서산의 어리굴젓은 오늘날에도 유명하죠. 이밖에도 서산에는 소금밭과 제련소, 어장이 있었고, 일찍부터 농업과 어업, 제조업이 잘 어우러져 주민들은 안정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져요. 일찍부터 중국과 교통해 불교를 받아들였던 서산 일대에는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는데 오늘날에도 20여 개의 웅장한 고찰이 남아 있는 것을 볼 때 사찰의 증축이나 불상의 제작, 선박제조를 맡은 기술자와 여러 장인들이 서산에서 활동했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부석사 관음불상을 통해 화려한 대도시는 아닐지라도 다양한 산업기반을 갖추고 또한 해로교통의 요지이자 불교의 고장으로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활기찼던 당시의 서산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죠.

Q.불상에 몸속에 복장물의 소중한 기록이 있었다고요?

-부석사 불상의 봉안은 역사책이나 어느 누구의 저술에도 실리지 않은 서산 사람들의 작은 행사였을 것입니다. 불상이 몸 안에 품고 있던 복장물이 없었더라면, 이 불상이 태어난 내력을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흔히 왕실과 귀족, 고승들의 이름으로 행해진 불교행사는 역사책에 종종 기록되었으나, 일반 서민들의 불사는 역사의 기록에서 제외되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복장물 속에서 나온 발원문은 알려지지 않은 서민들의 종교행사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예요. 1951년 일본 대마도 간논지 사찰의 안도 주지는 불상의 몸속에서 복장물을 처음 발견했는데 1978년 재단법인 서일본문화협회가 발행한 '대마미술'에서 일본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어요. 불상의 맨 밑바닥에는 북서된 다라니, 복부에는 세로로 길게 접은 결연문, 그 위에 다시 묵서된 다라니, 불상의 목 부분에는 삼베에 싸인 목합이 있었는데 유리구슬, 수정 등의 파편과 5방색의 직물쪼가리도 있었어요. 그러나 이러한 복장물이 왜 어떻게 흩어지고 유실되었는지 오늘날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요.

Q.불상을 제작하도록 시주한 서산주민 32명은 누구였나요?

-복장물 속에서 나온 발원문은 알려지지 않은 서민들의 종교행사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예요. 발원문에 따르면 부석사 불상의 시주자 32명 중에는 석이(石伊), 악삼(惡三), 시수(豕守)와 같이 성이 없는 천민(賤民)으로 보이는 이름도 여럿 섞여 있어요. 이런 점으로 보아 불상 결연문은 마을 주민들이 계층 구분 없이 한마음으로 유대를 다짐하며 관음상을 조성하고 봉안했음을 말해주고 있어요. 1346년 서산 문수사(文殊寺)에 금동 아미타래여좌상이 봉안되었을 때나, 역시 1346년 서산 남쪽 고을인 청양의 장곡사(長谷寺)에서 금동 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었던 경우를 본다면, 각각의 발원문에는 고위관리와 그 부인들, 승려, 서민, 천민 등 수백 명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는데, 평등하게 참여했던 신앙결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부석사의 경우 오히려 장곡사나 문수사에서 고위관리들이나 상층부 부인들의 여러 명 섞여 있지만, 부석사 불상의 봉안자들은 전원 무명의 순수한 서민이었고, 오로지 모든 중생의 구제와 후세에 함께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빌면서 인연이 없는 중생들까지도 제도하기 위해 불상을 봉헌한다고 밝히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부석사 불상의 발원문은 특이하게도 '결연문'으로 되어 있지요.

Q.2012년 일본 대마도 사찰 절도사건은 어떻게 된 일인가요?

-한국의 문화재 전문 절도범들이 2012년 10월 2일 일본 대마도 기사카(木板)마을에 세워진 가이진(海神) 신사 수장고에서 동조 아미타여래불상 1구를 훔쳤어요. 일본 전국에서 1급 신사로 등록된 99개 신사 중 하나이며, 대마도 유일의 1급 신사인 곳이죠. 그들은 또 가이진 신사 남쪽으로 20㎞ 떨어진 서해안 작은 포구마을 고즈나(小綱)의 간논지(觀音寺)에서 동조 관음보살좌상을 역시 훔쳤어요. 1526년을 문을 연 이 사찰은 관음보살좌상 1구와 머리만 남은 불상 1구가 모셔진 것이 전부인 무인 사찰이었어요. 그리고 절도범들은 대마도 서해안 최남단에 도착해 다구즈마다 신사에서 지붕에 구멍을 뚫고 내부로 침입해 고려 팔만대장경의 목판인쇄본 일부를 또다시 훔쳤죠. 부산항에 도착한 이들은 세관의 X선 투시대 앞에서 불상 2점을 모조품으로 신고하고 국내에 반입했어요. 2012년 10월 하순부터 대구지역에서 불상의 구입자를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절도 사실이 드러나 경찰에 검거됐고요. 절도범들은 다구즈마다 신사에서 훔친 대장경을 신사 주변의 야산에 버렸다고 주장하고 있어 대장경만은 아직 회수하지 못했고, 문화재청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가이진 신사에 있던 아미타여래입상은 통일신라 8세기 중엽 제작된 수작이며, 고즈나 간논지에 있던 관세음보살좌상은 1330년 서산 부석사(浮石寺)에 봉안된 고려불상이었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어요. 통일신라시대 동조여래입상은 불상이 불법 유출되었다는 증거가 없는 데다 국내에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도 없어 2015년 7월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일본 사찰에 반환했어요. 그리고 2013년 6월 대전지법 형사부는 절도범 3명과 자금책, 알선책, 판매책에 대해 각각 1~4년의 징역형을 선고했고, 그해 10월 고등법원은 이들의 항소를 기각해 절도사건의 재판을 끝냈지요.

Q.도난 사건이 발생해서야 대마도에 불상을 알게 되었나요?

-서산 부석사는 일본 대마도에 서산 부석사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 것을 알고 1990년대 이후로 환수운동과 기도를 해왔어요. 1996년 서산 부석사 전주지 도광스님이 대마도 사찰 간논지를 방문했을 때 관세음보살상과 나란히 대세지보살상의 불두로 보이는 유물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지요. 서산 부석사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시는 극량도량으로 아미타부처를 주전인 극락전에 모시고, 좌측에 관세음보살, 우측에 대세지보살을 모시게 되어 있는데 당시 함께 모셔졌을 것으로 보이는 아미타삼존불 중 아미타불은 자취가 없고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상은 간논지에 파손된 상태로 있었어요. 약탈이 아니고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여겨졌죠. 이에 앞서 1990년대 불교문화의 저명한 학자인 문명대 교수로부터 대마도 간논지 부처님이 서산 부석사 부처이니 반환 운동을 추진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요. 1996년에는 서산 부석사 주지인 도광스님께서 후쿠오카공보실을 방문해 서산 부석사의 부처님이 관음사에 모셔져 있음을 확인하고 관음사를 찾아가 부처님을 다시 돌려줄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타진했고요. 2004년 서산 부석면 친목단체인 부남친목회가 일본 간논지를 방문해 부석사의 금동관세음보살좌상과 대세지보살상도 함께 봉안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돌아온 일도 있지요.

Q.불상이 왜구에 의해 약탈됐다는 증거는 무엇인가요?

-부석사 불상의 손가락 끝과 가사자락 끝은 화상으로 문드러졌어요. 이 화상은 불상이 기증이나 교역이 아닌 전투 중의 약탈에 의해 이전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지요. 1978년 재단법인 서일본문화협회가 발행한 '대마미술'에서 일본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어요. "대마의 조선 금동불은 온전한 작품이 극히 적은데, 대마가 조선으로부터 받은 친절과는 별도로 불상의 전래에 평상적이지 않은 일이 많았다는 사정이 상상된다"라며 일본인 학자 스스로 전시 약탈에 의해 대마도로 이전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죠. 관음사가 위치한 고즈나 지역은 원래 왜구의 근거지이었으며, '대마미술'에서 간논지의 연혁에 대해 언급하길, "왜구의 한 집단이었다고 생각되는 고노씨가 창립한 간논지에 1330년 제작된 고려불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왜구에 의한 불상 등의 일방적 청구가 있었음을 추측하게 한다"고 밝혔어요. 서산시와 비슷한 170㎢ 면적의 대마도에는 오늘날 확인된 한국 불상이 130여 구 존재해요. 이들은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 초의 불상들인데, 완전한 형태의 불상이 거의 없고 전부가 출처 불명이며, 대마에 건너간 경위도 모두 불명이에요. 불상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조성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경위로 대마도에 가게 되었는지에 관한 아무런 기록도 없이 대마도에 존재하는 것이죠.

Q.왜구란 무엇인가요?

-왜구하면 흔히 해적이나 약탈자를 총칭하는 말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왜구는 한 시대의 현상으로서 역사적 용어라고 해요. 14~16세기에 걸쳐 200~300년 동안 한반도와 중국 연안의 해상에서 또는 육지에 상륙해 약탈과 납치, 살인과 방화를 자행했던 해적단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가르키고 있죠. 왜구라는 이름은 414년 세워진 광개토왕 비문에 처음 등장해요. 1270년대 몽고와 고려군의 일본 침공을 전후한 80년간 왜구는 고려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어요. 고려 충정왕 2년(1350년) 경인년에 갑자기 대규모 군사화한 왜구가 고려에 나타났고,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집요하게 침구했어요. 이때의 왜구는 일본의 남북조 내란기에 조직적으로 이웃나라를 약탈했던 호족 휘하의 무사들이고, 특별히 전쟁물자, 즉 군량미를 약탈하기 위해 침입한 일본의 군사들이었다고 보는 시선도 있어요.

Q.고려 말 왜구의 침구 기록은 어떤가요?

-고려 말, 1375년부터 1381년까지 6년간 서산이 최소 5차례 이상 왜구에 의해 침구되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은 서산 부석사 불상이 대마도에 존재하는 이유를 가장 웅변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고려사'에 보면 서산은 최소 6~7차례 왜구의 침구를 받았다. ▲1352년 3월 강화에서 남하하는 왜선을 서주 방호소에서 공격 ▲1375년 9월 왜적이 영주(천안), 목주(천안시 목천면), 서주(서산), 결성(홍성군 결성면)을 침구해 왔다 ▲1377년 4월 왜적이 여미현(서산시 해미)을 침범했다 ▲1378년 9월 왜적이 서주를 침구했다 ▲1379년 8월 왜적이 여미현을 침구하고 또 수주와 곽주를 침범했다 ▲1380년 5월 왜적이 배 100여 척이 결성과 홍주를 침구했다 ▲1381년 9월 왜적이 영주와 서주를 침구했다고 기록하고 있죠.

Q.2심 판결에서 부석사의 청구가 기각되었는데 왜죠?

-2017년 대전지법에서 이뤄진 1심 재판에서 법원은 여러 가지 사유를 들어 서산 부석사가 불상의 소유자임을 인정하고, 불상을 돌려달라는 청구를 전부 인용했어요. 불상은 1330년경 서산 부석사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불상에는 화상의 흔적이 있고, 보관과 대좌가 존재하지 않는 등 일부 손상된 상태를 보았을 때 이 사건 불상이 정상적인 경로로 이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러나 2월 1일 이뤄진 대전고법 2심에서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부석사의 청구를 기각하는 선고가 내려졌어요. 일본 대마도 간논지가 2심 재판에서부터 보조참가인 자격을 얻어 당사자로 참여했다는 것이 가장 큰 변수였어요. 간논지는 이번 재판에 일본 민법을 적용한 시효취득을 재판부에 주장했고, 고려 때 서주 부석사와 지금의 서산 부석사가 동일한 권리주체가 맞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결과적으로 2심 재판부는 서산 부석사가 고려 때 서주 부석사와 동일한 권리주체라는 것이 입증되지 않았고, 대마도 간논지가 법인으로 성립된 1953년부터 1973년까지 불상을 점유했음으로 20년간의 시효취득을 완성했다고 판단한 것이죠. 대한불교조계종도 이번 판결이 왜구에 의한 약탈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 나섰죠. 이에 따라 대한불교조계종과 부석사는 서주 부석사와 서산 부석사가 동일체이며, 약탈의 가능성이 농후한 문화재에 대해 시효취득은 주장될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대법원 상고를 준비하고 있어요.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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