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현 ETRI 실감소자연구본부 책임연구원 |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일상에 생동감을 부여해주었던 각종 관계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쉽게 가졌던 모임도 대부분 사라졌다. 일상의 업무, 교육, 사업 등과 같이 만남을 전제로 하는 관계도 현실이 아닌 가상으로 치환이 되었다.
여기서 관계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관계는 필시 구조로 확장되며 구조는 한 집단 혹은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관계와 지속가능성의 상관관계는 가까운 예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생물 구성 기관들에 있어서 상호 관계와 협업은 생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세포막은 물질의 출입을 통제하여 생명을 보호한다. 식물의 엽록체는 광합성을 수행하여 자신에게 유용한 당(糖)을 생산하고 대기에 산소를 공급하여 준다. 이러한 일련의 관계를 통하여 단위 수준의 세포부터 거시적인 지구 생태계까지 지속 가능하다.
관계와 지속가능성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확장이 가능하다. 모든 관계는 사회의 지속 가능에 기여한다. 여기서 부정적인 불편한 관계는 접어 두도록 하자. 필자는 팬데믹이 관계에 대한 인식을 크게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원해진 관계들은 인간 기질에 내재한 사회성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팬데믹 이후로 아주 다른 관계 방식이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이미 가상 공간에 익숙해져서 대면 회의보다는 인터넷을 이용한 화상회의를 편하게 받아 드린다. 의료, 엔터테인먼트, 교육, 소비는 이제 물리적 접촉이 없는 형태로 수요자/공급자 관계가 수정되고 있다. 과거의 오프라인 경험이 가상공간, 나아가 메타버스 등에서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더욱 깊은 사용자 편의성을 위하여 현실과 가상을 연결해주는 가상현실과 실감 나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증강현실 기술에 대한 수요가 급속하게 증대하였다. 이의 배경에는 방대한 데이터를 송출해주는 초고속 인터넷 통신기술과 인간 감각기관을 교묘하게 만들어 주는 기술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예컨대 시각을 대상으로 삼는 기술로는 대표적으로 디스플레이 기술을 들 수 있다. 디스플레이 장치의 해상도와 색 재현율이 높을수록 몰입도와 사실적인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 실감 넘치는 시각정보를 제공해주는 디스플레이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강자이다. 덕분에 새로운 관계와 지속가능성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물리적 근간 또한 제공해 주는 데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뜻하지 않게 중증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관계에 대한 인식과 관계의 큰 틀을 바꾸었다. 오로지 기계적인 자기복제에만 몰두하는 바이러스가 이런 큰일을 하다니 참으로 놀랍다. 일련의 가상 관계를 가능케 한 여러가지 기술들은 이제 새로운 지속가능성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술을 통하여 이제 현실과 가상은 중첩이 되었으며 집단적 허구가 새로운 관계와 지속가능성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세상을 엮고 있는 망은 여전히 관계에 기초하고 있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기초 요소는 디지털과 데이터의 복합체가 되었다. 정보수집목적으로 도서관 서가에서 오래된 종이 냄새를 맡으며 자료를 찾는 일은 많은 사람에게 노스텔지어가 되었다. 이미 우리의 일상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단위 화소폭은 이미 인간의 눈이 구별할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1㎛(마이크로미터)가 1백만 분의 1m인데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의 단위 화소폭은 10㎛보다 작게 만들어진다. 이 작은 화소들이 새로운 지속가능성을 가능케 하는 인간적인 관계 요소의 한 조각이라고 말하여도 지나친 과장은 아니라 생각한다. 문제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실감소자연구본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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